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등이 8월29일 부산시의 영어상용도시 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광수 기자
“우리 말과 글은 대한민국의 경쟁력”(한덕수 국무총리)
“영어 상용이 부산의 경쟁력”(박형준 부산시장)
우리 말과 외국어 쓰임새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전혀 다른 결의 주장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중앙정부는 우리 말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임을 강조하며 공공언어에 외국어 사용을 줄인다는 방침을 밝힌 데 견줘 부산은 한글 단체의 반발에도 공공언어에 영어 병기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9일 한글날을 맞아 “정부는 공공기관, 언론과 함께 공공언어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쉬운 우리말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 기념사에서 이같이 밝히며 “우리의 말과 글의 힘이 곧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한 총리는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 빅데이터를 꾸준히 구축해나가겠다”며 “변화하는 언어 환경에 맞춰 우리의 말과 글을 더 아름답게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말 가꾸기는 현 정부만의 강조점은 아니지만 부산시는 일찌감치 이와는 다른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취임 이후 꾸준히 영어상용 정책을 펴며 한글단체의 반발을 사왔다.
박형준 시장은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 대비 등을 명분삼아 영어상용도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구체적으로 외국 교육기관 유치·설립과 도로표지판·공공시설물 영문표기화, 대중교통 영어 사용 환경 확충, 호텔·식당 등에 영어 표기 지원, 공문서 영어 병기,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시 조직 내 ‘영어상용화추진팀’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한 데 이어 부산시교육청과 영어상용도시 조성 협약을 지난 9월 맺었다. 영어상용도시 전략 구체화를 위한 연구 용역도 발주했다.
박 시장의 이런 방침에 한글단체는 반발 중이다. 영어상용은 부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지럽히고 영어남용을 부를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글학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한글문화연대 등 76개 국어단체와 부산작가회의 등 부산 시민단체들은 지난 8월 말 ‘부산 영어상용도시 정책반대 국민연합’도 꾸렸다.
부산 시민 여론도 박 시장 정책에 호의적이지 않다. 한글문화연대의 지난 6일 발표를 보면, 여론조사 기관 티앤오코리아가 부산시만 5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영어상용도시 부산 정책에 대한 시민인식 조사’에서 부산시의 영어상용도시 정책에 대해 반대(40.9%) 응답이 찬성(27.6%) 응답을 크게 웃돌았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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