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나일성(44)씨가 광주시 서구 쌍촌동 영구임대아파트 자신의 방안에 붙은 홍성담의 판화 <횃불행진>과 김준태의 시 <별> 등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도청 끝까지 지키다 체포 온갖 고문에 인생 와르르
두차례 자살 기도 수포로 “참 질긴 인연이야…”
두차례 자살 기도 수포로 “참 질긴 인연이야…”
5·18 시민군 나일성씨 ‘잃어버린 26년’
“할 수만 있다면 이젠 광주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시민군 기동타격대 6조원 나일성(44)씨. 그는 1980년 5월 18살 청년이었다. 가구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상처입은 ‘5월 광주’를 두렵게 지켜보다 전남도청 앞 첫 발포 뒤 총을 들었다. 광주를 지키기 위해서. 총을 만져본 적도 없었지만 기동타격대에 편성됐다. 그리고 나흘 만에 계엄군의 탱크가 밀어닥쳤다.
“이모가 사는 백운동 까치고개를 넘으면서 ‘여기서 뛰어 내리면 살 수 있는데…’하는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동지를 떠날 수도 총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는 5월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붙잡혔다. 트럭에 실려 상무대로 끌려가 모진 매질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앞니가 부러지고 무릎이 부서졌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순간이었다.
한해 사이 두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80년 6월 감옥 안에서 굴욕을 당할 바엔 차리리 죽는 게 낫겠다며 알약 한 움큼을 삼켰다.
81년 3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사면복권 통지서가 날아왔다. 분노한 그는 알약 수십 개를 또 털어넣었다. 이번에는 사흘 만에 깨어났다. 이번엔 망명을 계획했다. 300만원을 빌려 81년 11월 여수에서 보름을 헤맸으나 일본 가는 배를 구할 수 없었다. 다시 광주로 돌아온 그는 83년 5·18민중항쟁동지회를 결성해 군부독재와 싸웠다.
이듬해 5·18묘지를 참배온 참한 여대생을 만나 결혼했고 딸 둘을 얻었다. 단꿈은 잠깐이었다. 불안과 공포 탓에 잠들려면 30~40분씩 귀에서 울리는 전자음에 시달렸고, 수면제가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들었다가도 금세 깨어 꿈조차 꾸지 못했다. 술과 담배에 빠졌다. 결국 4년만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는 93년 중국 투먼에서 두만강을 건너겠다는 딴 맘(?)을 품기도 했지만 사전에 들통이 났다.
보상심사에서 장해 12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살림에도 건강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몸무게는 60㎏에서 42㎏으로 줄었고, 날품팔이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5만원짜리 사글세방을 전전할 정도가 됐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 좁은 방에서 혼자 우두커니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전남대 심리건강연구소는 ‘만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정신증적 특성을 동반한 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나씨와 같은 장애를 앓는 피해자는 5·18부상자 가운데 64.5%로 나왔다. 그는 지난 1일 5월을 잊으려 광주를 떠났다. 그렇지만 경남 밀양의 산비탈을 헤매다 미끄러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열흘 만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질긴 인연이야.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소용이 없거든. 떠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5·18사적지로 바뀐 상무대 영창의 문지기라도 하고 싶어….”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보상심사에서 장해 12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살림에도 건강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몸무게는 60㎏에서 42㎏으로 줄었고, 날품팔이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5만원짜리 사글세방을 전전할 정도가 됐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 좁은 방에서 혼자 우두커니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전남대 심리건강연구소는 ‘만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정신증적 특성을 동반한 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나씨와 같은 장애를 앓는 피해자는 5·18부상자 가운데 64.5%로 나왔다. 그는 지난 1일 5월을 잊으려 광주를 떠났다. 그렇지만 경남 밀양의 산비탈을 헤매다 미끄러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열흘 만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질긴 인연이야.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소용이 없거든. 떠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5·18사적지로 바뀐 상무대 영창의 문지기라도 하고 싶어….”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