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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항쟁 20돌…“정부 밀실행정, 준엄한 질타 기억해야”

등록 2010-11-09 08:23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 주민 투쟁 일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 주민 투쟁 일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투쟁위원장 최규만씨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 추진
주민 대규모 연행·회유 압박
2년5개월만에 결국 백지화

“빨리 피하시오!” 곤한 잠에 빠져들었던 최규만(당시 37살·사진)씨를 누군가 어둠 속에서 불러 깨웠다. 벌떡 일어나 집 밖으로 나서니, 경찰이 새카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최씨는 차를 타고 정신없이 피했다. 1990년 11월9일 새벽이었다. 전날 밤 정근모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이 ‘안면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계획 백지화’를 발표한 뒤 곧바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애초 안면도는 맑은 물과 금빛 모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11월3일 ‘정부가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건설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안면도는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이미 두달 전부터 ‘원자력 제2연구소안’을 만들어 주민 몰래 일을 진행시키던 참이었다. 안면도에 핵폐기물 영구관리를 위한 처분장을 만들어 전국의 ‘핵찌꺼기’들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었다.

최씨는 지난 7일 고남면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우리는 ‘사태’를 일으킨 게 아니라 ‘항쟁’을 한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8일로 20돌을 맞은 ‘안면도 반핵 항쟁’은 “독재정권에 맞선 민권운동의 첫 승리”, “권위주의 행정을 거부하고 민권시대를 연 신호탄”이라는 게 주된 평가다.

90년 11월8일은 ‘운명의 날’이었다. 이날 오전 안면도 1만7000여 주민 가운데 1만명 이상이 안면읍 광장에 모였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했고 상가는 문을 닫아걸었다. 오전 11시40분께 분노한 주민들이 서산경찰서 안면지서장의 차량을 불태웠다. 공무원 6명이 안면읍사무소에 갇혀 폭행당하는 일까지 터졌다. 해 질 무렵 전투경찰 3500여명이 안면읍으로 진입했고, 주민들은 안면지서에 불을 질렀다. 결국 이날 밤 노태우 정부는 ‘핵폐기장 건설 계획 백지화’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승리’는 잠깐뿐이었다. 이튿날 새벽부터 경찰은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 중·고생을 포함해 70여명을 연행했고 7명을 구속하거나 수배했다. 민주당이 꾸린 공동변호인단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폭풍 해일처럼 급박했던 1주일이 지난 뒤 정부는 주민 포섭·회유에 들어갔다. 건설 계획 ‘철회’와 ‘추진’이 거짓말처럼 반복됐다. 안면도가 공식적으로 핵폐기장 후보지에서 제외된 것은 2년5개월이 지난 93년 3월에 이르러서다. 최씨는 당시 핵폐기장 후보지였던 고남면의 투쟁위원회를 이끌며 ‘최후의 1인’으로 남아 정부와의 싸움을 이어갔다. “안면도 항쟁은 밀실행정에 대한 준엄한 질타인 거여. 공청회라도 주민들하고 한번 했냐 이거여. 우린 죽고 사는 문제였어.”


최씨는 지난해 12월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병들고 나니 억울한 생각이 들어. 허지만 난 옳은 일을 했어.”

8일 오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버스터미널에선 ‘안면도 항쟁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건 당시 주민들이 썼던 머리띠·만장·펼침막 등이 바람에 나부꼈다. 주민들은 기념사업회를 꾸려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에 들어갔다. 박재묵 충남대 교수(사회학)는 “시위 과정에서 일부 폭력이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안면도 항쟁은 반핵·환경 운동이자 주민생활 방어와 자주적 지역발전 운동이며 애향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안면도/글·사진 전진식 송인걸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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