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여고생 자살 45일만에…부담 못떨치고 목숨 끊어
인터넷 무차별 인신공격성 댓글 ‘또다른 화근’ 지적
인터넷 무차별 인신공격성 댓글 ‘또다른 화근’ 지적
대전의 한 여고에서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5일 만에 같은 반 학생이 또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에다, 먼저 숨진 학생의 주변 친구들을 향해 인터넷에서 무차별로 쏟아진 인신공격성 댓글이 부채질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6일 저녁 6시40분께 대전 서구 한 아파트 14층에서 박아무개(17·고1)양이 뛰어내려 숨졌다. 지난달 2일 같은 반 친구 송아무개(17)양이 목숨을 끊은 지 45일 만이었다. 숨진 박양은 송양과 친한 친구이자 반장으로, 지난달 2일 송양이 다른 친구들과 다투고 고민하자 송양을 두둔하며 함께 담임교사를 찾아간 학생이었다.
송양의 자살 경위를 조사해온 대전 서부경찰서는 17일,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며 침통해했다. 경찰은 타살 혐의는 없지만 송양 부모가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라며 진정서를 내 조사해왔다. 박양은 송양과 친했고, 교사와의 상담 내용을 알고 있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박양은 지난달 2일 송양한테서 ‘저녁밥을 먹으러 가자’는 말을 들었으나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며 가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박양이 ‘당시 같이 나갔으면 자살하지 않았을 텐데,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며 괴로워해왔다”고 밝혔다. 송양 사건 직후 박양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전시교육청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끝내 자책감을 떨치지 못한 것 같다고 경찰은 전했다.
인터넷의 송양 추모 카페에 올라오는 비난 댓글도 박양에게 짐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중순 ‘송양 외사촌 오빠’라는 이가 ‘왕따를 못 견뎌 투신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공개한 뒤, 지난달 말 개설된 ‘송양 추모 인터넷 카페’에는 송양이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에 숨진 것으로 단정한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이 잇따랐다. 박양은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상태여서 비난 댓글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조사받은 학생들 대부분이 이 카페를 보고 있고 일부 학생은 물론 부모들도 심각한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경찰관은 “송양에게 처벌 가능한 학교폭력 수준의 따돌림 등이 가해진 사실은 없었다”며 “학부모들 대부분이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 또 비극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며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사받은 학생들의 부모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박양 부모는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으며, 18일 오전 충남의 한 화장장에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대전시교육청은 17일 오후 초·중·고 교장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일선 교사들의 학생지도 강화를 당부했다. 김신호 대전시교육감은 “인터넷상의 무차별적인 익명성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 모두가 나서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전지부도 교사와 학생의 일대일 멘토링 시스템 도입 등을 교육 당국에 제안했다.
대전/송인걸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