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닥터 클리닉’ 의료진이 2월18일 오전 서울시 은평구 응암2동 주민센터 마당에서, 은평구가 24인승 버스를 개조한 이동진료 차량을 찾아온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현장 쏙] 공공의료 틈새 메우는 ‘이동진료차량’
집 앞에 병원이 있어도 몇만원이 없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선 의료진을 태운 이동진료 버스가 이런 어르신들을 찾아나섰다. 의료 사각지대의 틈새를 메우는 진료 현장을 살펴봤다.
집 앞에 병원이 있어도 몇만원이 없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선 의료진을 태운 이동진료 버스가 이런 어르신들을 찾아나섰다. 의료 사각지대의 틈새를 메우는 진료 현장을 살펴봤다.
“다음달 13일 여기로 오시면, 보건소에 모셔가서 피 검사, 소변 검사 하고 엑스레이 찍고 다시 데려다 드릴게요. 오늘은 무릎 아픈 거 치료하는 약을 드릴게요. 무릎 관절 치료에는 수영이 좋아요.”
“수영 갈 시간이 없어. 밭에 가서 일해야 해.”
“쪼그려 일하는 것이 무릎에 제일 안 좋아요.”
지난달 18일 서울 은평구 응암2동 주민센터 앞마당. 24인승 버스 내부를 개조한 이동진료 차량 ‘마이 닥터 클리닉’에선 의사와 환자들의 대화가 종일 이어졌다. 친구 소개로 들렀다는 유명자(72) 할머니는 “처음 왔는데도 자상하게 가르쳐주니 좋다”고 말했다.
이동진료 버스 안에선 접수와 검사, 진료와 조제가 차례로 이뤄진다. 의사 1명, 약사 1명, 간호사 2명, 행정직원 1명, 운전기사 1명 등 6명이 팀을 이뤄 하루 50~60명을 무료 진료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로 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을 1차 진료한다. 처음 찾아오면 은평구 보건소로 데려가서 혈액·소변 검사, 흉부 방사선 촬영 등 기초적인 검진을 한다.
이주상(87) 할아버지는 부인 한순임(84)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동진료 버스에 찾아왔다. 할아버지는 “병원 가려면 멀리 나가야 했는데, 3분쯤 걸어 의사한테 진료도 받고 약도 타가니 너무도 편하다”고 말했다. 혈압이 높은 이들 부부는 “여기 약이 잘 들어 혈압이 좋아졌다”며 미소지었다. 안아무개(81) 할아버지는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아파트에서 지내는데 자녀들과 연락도 끊어져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안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나오는 9만8000원과 교회 지원이 전부야. 사는 게 기가 막히지만 여기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너무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날은 인근 아파트 노인회에서 이동진료 차량이 온다는 소식을 두루 알린 까닭에 처음 온 환자들로 북적였다.
마이 닥터 클리닉은 2011년 2월 등장했다. 은평구 주민센터와 경로당, 장애인복지시설 등 22곳을 다달이 1회씩 찾아가 65살 이상 어르신과 장애인 등을 진료한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어르신들이 한달에 한번은 가까운 곳에서 주치의를 만나듯이 진료를 받는 게 중요하겠다 싶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라고 말했다. 동네 특성을 살펴 심리 상담, 이·미용 서비스, 손발 마사지, 한방 수지침도 병행하는 등 이동진료 내용도 진화했다. 지난해 연인원 8978명을 진료했고, 2012년엔 1만122명을 보살폈다. 대형 병원이 없고 강남권에 견줘 의료 여건이 좋지 않은 틈새를 이동진료 차량이 어루만지고 있는 셈이다.
의사·약사·간호사 태운 의료버스
서울 은평 경로당 등 22곳 정해
월 1회 찾아 무료로 돌봄 진료
혼자 사는 어르신들 말동무까지
“약까지 지어주니 더없이 좋아” 병원 접고 이동진료 나선 김대환씨
“오지·농촌 등 전국으로 넓혔으면”
시민단체도 “공공병원 문턱 낮춰야” 의사 김대환(49)씨는 8년 동안 운영하던 의원을 접고 이동진료 버스에 올랐다. 은평 토박이인 그는 어머니 간병을 위해 몇 달 쉰 것을 빼고는 이동진료에 힘을 쏟아왔다. 김씨는 “이동진료에서 생애 처음으로 혈압 이상이나 당뇨를 발견하는 어르신도 있다. 그럴 때는 ‘오늘 할 일을 했구나’ 뿌듯하면서도 ‘이렇게 되도록 병원을 찾지 못했나’ 착잡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직장을 잃거나 부모를 챙기지 않으면 실제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이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이 진료 대상이다. 의료 소외층을 찾아다니다 보니, 여느 병·의원과는 다른 풍경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먼저 의료진은 서두르지 않는다. 몸의 병만큼이나 외로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 어르신들에게 말동무가 돼준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약 먹는 법도 하나씩 또박또박 일러준다. 어떤 질환을 앓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아, 숨은 병을 찾아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려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문진이 무척 중요하다. 어르신들이 이동진료 날짜를 놓칠 때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당뇨나 혈압 약은 날마다 먹어야 하는데, 약 없이 한달을 꼬박 기다리기도 한다. 의료진과는 “날짜를 넘기면 다른 병원이라도 꼭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손에 몇만원이 없는 탓이다. 이런 이동진료를 더 확대할 수는 없을까. 의료 사각지대가 넓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의료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빈곤층건강권사업단 집행위원은 “돈이 없어도 공공병원에 가서 누구나 거리낌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의료서비스의 구실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동진료를 공공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작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네를 찾아가는 이동진료를 바라는 수요가 많지만, 어르신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질환이 악화될 경우에는 무료 이동진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을 늘리고 그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 김씨는 “농촌지역에선 버스가 환자를 싣고 데려가 진료시설에서 치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실정에 맞게 이동진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견해다. 지난해 12월 마이 닥터 클리닉에 합류한 약사 정두영(27)씨는 “의료 인프라 부족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의료 인프라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절박한 처지의 어르신에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준현 정책위원은 “마이 닥터 클리닉 사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 65살 이상 저소득층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욕구가 있다. 의료에 국한하지 말고 복지까지 확장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서울 은평 경로당 등 22곳 정해
월 1회 찾아 무료로 돌봄 진료
혼자 사는 어르신들 말동무까지
“약까지 지어주니 더없이 좋아” 병원 접고 이동진료 나선 김대환씨
“오지·농촌 등 전국으로 넓혔으면”
시민단체도 “공공병원 문턱 낮춰야” 의사 김대환(49)씨는 8년 동안 운영하던 의원을 접고 이동진료 버스에 올랐다. 은평 토박이인 그는 어머니 간병을 위해 몇 달 쉰 것을 빼고는 이동진료에 힘을 쏟아왔다. 김씨는 “이동진료에서 생애 처음으로 혈압 이상이나 당뇨를 발견하는 어르신도 있다. 그럴 때는 ‘오늘 할 일을 했구나’ 뿌듯하면서도 ‘이렇게 되도록 병원을 찾지 못했나’ 착잡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직장을 잃거나 부모를 챙기지 않으면 실제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이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이 진료 대상이다. 의료 소외층을 찾아다니다 보니, 여느 병·의원과는 다른 풍경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먼저 의료진은 서두르지 않는다. 몸의 병만큼이나 외로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 어르신들에게 말동무가 돼준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약 먹는 법도 하나씩 또박또박 일러준다. 어떤 질환을 앓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아, 숨은 병을 찾아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려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문진이 무척 중요하다. 어르신들이 이동진료 날짜를 놓칠 때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당뇨나 혈압 약은 날마다 먹어야 하는데, 약 없이 한달을 꼬박 기다리기도 한다. 의료진과는 “날짜를 넘기면 다른 병원이라도 꼭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손에 몇만원이 없는 탓이다. 이런 이동진료를 더 확대할 수는 없을까. 의료 사각지대가 넓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의료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빈곤층건강권사업단 집행위원은 “돈이 없어도 공공병원에 가서 누구나 거리낌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의료서비스의 구실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동진료를 공공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작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네를 찾아가는 이동진료를 바라는 수요가 많지만, 어르신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질환이 악화될 경우에는 무료 이동진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을 늘리고 그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 김씨는 “농촌지역에선 버스가 환자를 싣고 데려가 진료시설에서 치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실정에 맞게 이동진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견해다. 지난해 12월 마이 닥터 클리닉에 합류한 약사 정두영(27)씨는 “의료 인프라 부족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의료 인프라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절박한 처지의 어르신에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준현 정책위원은 “마이 닥터 클리닉 사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 65살 이상 저소득층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욕구가 있다. 의료에 국한하지 말고 복지까지 확장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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