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찾아온 손님들과의 면담이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23일 오후 강원도청 통상상담실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기다리다가 ‘거대한 인삼주’를 발견했다. 높이 1m짜리의 커다란 유리병 안에 지름이 5㎝가 넘는 굵은 인삼들이 가득했다. 지난 4월 홍천군의 인삼 재배 영농법인이 보낸 거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선물’이 아니라 ‘민원’이었다. 지난해 도루묵, 올해엔 감자를 팔아 화제를 모은 최 지사에게 “이번엔 ‘홍천 인삼’ 좀 팔아달라”며 보낸 거였다. 최삼경 강원도 대변인은 “7월 중순께면 술 담근 지 100일이 되는데 지사님이 과연 그때까지 가만히 놔두실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사무실에 나타난 최 지사는 18대 국회 때 ‘언론악법’에 반대해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누비던 때와 변한 게 없었다. 깡마른 체구, 옆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인상, 거기에 누구를 만나든 90도 이상 허리를 굽혀 악수하는 ‘폴더폰 인사’까지. ‘자학개그’도 여전했다. “이번에 따님들이 선거운동을 열심히 해서 당선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들 한다”며 덕담을 건네자, 그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딸들한테 ‘할아버지가 후보로 나왔냐’고 물었다더라. 너무 상처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국회의원 때도 강성, 비주류로 통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주민들을 가까이 만나면서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더욱 매서워진 듯했다. 그는 “정치인은 귀족화되면 안 된다”, “꼭 국회 배지를 달아야 하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굴러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가까운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향후 본인의 정치 일정에 대해 묻자 ‘수줍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개헌과 제7공화국 출범이라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선 비장감마저 묻어났다. 춘천/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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