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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20년…‘시인의 꿈’ 마침내 펼치다

등록 2014-08-04 19:33수정 2014-08-04 22:09

오재길(48)씨
오재길(48)씨
오재길씨 ‘세월의 길목에서’ 출간
필요한 돈 300만원 봉투 접어 마련
“15년을 사귄 애인에게 딸을 주고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1985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시인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94년 기분장애(조울증)가 갚을 수 없는 빚처럼 그를 옭아맸다. 정신병원 입원 치료 뒤 지금까지 20년, 그는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독신인 그에게 시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애인이었다. 그동안 사랑하며 쓴 시가 1000편을 넘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97편을 골라 지난달 시집으로 묶었다. 정식 등단 따위가 아니어도 문학청년은 시인이 되었다. 시집 출간에 필요한 돈 300만원은 요양시설에서 봉투를 접고 쇼핑백을 만들어 다달이 몇 만원씩 모아 장만했다. 봉투 하나 접어 받는 돈은 채 10원도 되지 않는다.

시인의 꿈을 20년 만에 이룬 오재길(48·사진)씨. 그의 첫 시집 제목은 <세월의 길목에서>(문경출판사)다.

대학 교수 3명이 그의 시 쓰기를 도왔다. 그가 지내는 충남 논산의 요양시설 성지드림빌의 직업 재활 프로그램도 든든한 후원이 됐다. 그는 책 표지에 담긴 시 ‘한 송이 꽃·1’에서 지난 삶과 다가올 미래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 인생은 벌 나비 찾아드는 한 송이 꽃이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꽃 나도 모르게 시들어 가는 꽃 (…) 세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지 몰라도/ 지금은 화사한 꽃 한 송이로 저물어 가는 내 청춘에/ 생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리.” 오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시는 저에게 삶 자체예요”라고 말했다.

홍성/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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