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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간장병 활용해 ‘유리벽’ 만들어 참여주민 소통하고 애착 쌓여”

등록 2014-09-23 22:19

야마자키 료 ‘스튜디오-엘’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사람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디자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야마자키 료 ‘스튜디오-엘’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사람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디자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커뮤니티 디자인’ 야마자키 료 방한

“서울도 커뮤니티 디자인 필요
기존건물에 새 의미 부여하고
잘 활용하게 하는 게 중요하죠”
일본의 쇼도시마(小豆島) 섬은 간장이 유명하다. 섬 안에 간장 공장이 있고, 섬을 걷다 보면 간장 향내가 감돌 정도다. 일본에서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야마자키 료(41) ‘스튜디오-엘’ 대표는 이 간장을 이용해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시켰다.

공동체 활성화에 쓰인 재료는 간장만이 아니다. 디자인도 재료가 됐다. “마을 주민들이 디자인을 함께 고민하면서 작업에 참여하면 그 과정에서 소통하게 되고, 마을에 대한 애착도 쌓일 수 있다”는 게 야마자키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는 마을 주민 50명과 함께 공장에서 남아돌아 골칫거리인 간장 유리병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이미 산화돼 버린 간장도 모았다. 유리병 각각에 간장의 농도를 다르게 해 넣었다.

무려 8만개의 유리병에 간장을 넣으려니 일손이 부족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고령자 시설을 찾아 주사기를 이용해 간장을 넣는 작업을 이어갔다. 간장이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번지듯 변화하는 ‘그러데이션’ 효과를 냈고, 형광등 불빛을 이용해 아름다운 유리벽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함께한 주민들은 ‘간장회’를 스스로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주민들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일은 저와 상의하라고 했는데, 제멋대로 점퍼나 티셔츠를 만들었어요.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서 ‘왜 상의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 참 디자이너였죠?’라고 말하더군요. 이들은 제가 디자이너라는 걸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는 정말 기쁜 일입니다.” 야마자키 대표는 쇼도시마의 사례를 들며 “우리가 제일 만들고 싶었던 작품은 유리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유대관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마을 살리기’ 활동으로 일본에서 아이돌 스타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쓴 책 <커뮤니티 디자인>은 일본에서 10쇄를 찍을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23일 커뮤니케이션 협동조합 ‘살림’의 초대로 서울을 찾아 ‘사람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디자인’을 주제로 서울시에서 강연했다.

강연에 앞서 그를 만났다. 그는 지금의 서울은 커뮤니티 디자인이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일본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니 신축 건물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어렵다. 이미 가지고 있는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새로운 건물을 많이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요. 그렇다면 기존에 갖고 있는 것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주민들이 잘 활용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입니다.”

그의 제안은 고령화 시대와도 연관돼 있다. 고령층은 새로운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는 “도시 구성원의 다수가 고령층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원래 있던 건물들을 있는 그대로 살려 잘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 디자인의 핵심은 주민참여다. 주민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주민들은 반드시 있어요. 그분들에게는 다른 커뮤니티 디자인을 할 수 있게 해주면 돼요.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는 식이죠. 꼭 한 가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겁니다.”

글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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