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돌아다니지 못해 정말 답답…징역 산 것 같습니다”

등록 2015-06-19 19:53수정 2015-06-19 21:05

르포 ㅣ ‘2주 격리’ 풀린 순창 장덕마을
“두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돌아다니지 못해 정말 답답했습니다. 징역을 산 것만 같습니다.”

19일 오전 9시께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장덕마을 주민 김효선(78)씨는 집 마루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2주일 만에 찾아온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이다. 이 마을은 6월5일 0시부터 18일 밤 12시까지 2주일간 외부와 격리됐다. 이 마을에 전북지역 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이자 국내 51번째 확진자로 지난 12일 숨진 ㄱ(72)씨가 살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때문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을이 통째로 격리되자 주민들은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김씨는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 더이상 아픈 사람이 나오지 않아 너무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격리 조처 이후 이 마을에서는 ㄱ씨 말고는 확진 확자는 물론 의심 환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날 오전 찾은 마을 노인정은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김씨는 “그동안 이웃끼리 서로 얘기도 못했다. 격리 기간에는 노인정에 아예 사람이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통제 초기에는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조처라 순응”

2주간 못다녔던 발길 분주
가게로 밭으로 학교로 병원으로…
“아픈 사람 더 안나와 다행”

읍내도 위축 “매출 90%나 줄었어”
“순창서 왔다면 사람들이 떨어”

주민 정아무개(55)씨는 이날 아침 8시께 마을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보라색 마스크를 착용한 정씨는 “귀가 아픈데 순창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전남 담양으로 진료를 받으러 간다. 통제기간에는 보건소에서 약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사는 초·중·고교 학생 11명도 이날부터 등교를 재개했다. 순창중앙초등학교 권영숙(54) 교장은 “그동안 고생한 학생들을 학교 정문에서 꼭 안아줬다. 다른 학생들이 이 마을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고 말했다.

격리에서 풀려난 주민들은 생업인 농사부터 걱정했다. 주민 한아무개(78)씨는 오전 8시께 오토바이를 타고 밭으로 향했다. 한씨는 “순창읍과 경계인 인계면에서 담배·깨·매실을 기르는데 담배밭을 전혀 관리하지 못해 70%가량 피해를 입었다. 면사무소 직원이 밭을 둘러보고 이상 유무를 전화로 알려줬지만 내 농작물을 직접 못 돌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순창읍내에서 인장·열쇠가게를 하는 주민 이아무개(46)씨는 이날 아침 6시에 읍내로 나가 가게 청소를 하고 돌아왔다. 이씨는 “보름 동안 가게 문을 못 열어 단골손님을 놓칠까 걱정스럽다. 통제 초기에는 화도 났지만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처라 순응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사람 10여명이 읍내에서 가게를 한다고 이씨는 전했다.

메르스로 위축된 지역경제 회복을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순창시장의 ㅅ순대집 주인(57)은 “메르스 사태 이후 아예 외지인이 순창을 찾지 않는다. 매출이 평소보다 90%나 줄었다. 하루에 국밥 10그릇도 못 팔 때도 있었다. 20년 동안 식당일을 했으나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이아무개(62)씨는 “순창에선 돌아가신 할머니 1명 외에는 추가 환자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외지에 나가 순창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벌벌 떤다”며 일부의 과민반응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숙주 순창군수는 “마을 주민들이 힘들었을 텐데도 2주간의 통제에 잘 따라줬다. 지역경제가 메르스 직격탄을 맞았지만, 각계의 도움으로 회복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순창군은 앞으로 5일간 장덕마을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전화로 파악하며, 마을 들머리에 이동건강상담실을 운영한다. 밀착 접촉자 14명은 보건소 직원들이 5일간 매일 방문해 건강을 살필 예정이다.

순창/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지금껏 울산바위로 홍보했는데’...‘천후산’ 어떤가요? 1.

‘지금껏 울산바위로 홍보했는데’...‘천후산’ 어떤가요?

제주 해상 침몰 금성호 실종자 추정 주검 1구 추가 인양 2.

제주 해상 침몰 금성호 실종자 추정 주검 1구 추가 인양

‘창원의 명태균’은 왜 ‘김영선 공천’을 원했을까? 3.

‘창원의 명태균’은 왜 ‘김영선 공천’을 원했을까?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4.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포항이 흔들렸다” 포스코제철소서 큰 불…5시간 만에 진화 5.

“포항이 흔들렸다” 포스코제철소서 큰 불…5시간 만에 진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