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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주민엔 배가 대중교통…비싸봐야 7천원

등록 2016-12-20 08:49수정 2016-12-20 09:23

섬주민 여객선 운임 지원 전국 250개 섬으로 확대
한 문장이 바꾼 세상

“최북단 접경지역 내 서해 5도서에 거주하는 주민에 대하여 여객선 운임(도선의 여객운임 포함)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여 보다 저렴한 운임으로 육지로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도서지역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서지역 주민의 복리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인천광역시 서해 5개 도서 등 주민 여객선운임지원 조례 제1조 뱃삯의 50% 지원 -2004년 6월 시행

서울시 마포구에 사는 이아무개(51)씨는 최근 아내와 함께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에 있는 인척의 상가에 다녀왔다. 이씨 부부는 “뱃삯으로만 26만6천원을 냈다”며 “서울에서 부산 가는 케이티엑스나 비행기 요금보다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천여객터미널~백령도 간 1인당 편도 운임은 6만6500원이다. 이는 서울~부산 간 케이티엑스 요금 5만8900원보다 높고, 우등버스 4만4천원, 저가항공 5만9천원보다 비싸다.

하지만 백령도에 사는 김아무개(60)씨는 백령도에서 인천을 오갈 때 뱃삯으로 정상 운임의 10.5%인 7천원만 내고 다닌다. 섬 주민들에게는 ‘여객선 운임 상한제’가 도입돼 아무리 뱃삯이 비싸도 최고 7천원만 내면 된다. 나머지 금액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 준다. 김씨도 2004년 이전에는 서울에 사는 이씨 부부와 똑같은 뱃삯을 내고 뭍으로 나왔다. 김씨는 “지금은 큰 부담이 없이 뭍을 오가지만, 이전에는 뱃삯 때문에 친인척 결혼식처럼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뭍에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섬 주민들이 뱃삯 부담 없이 뭍을 오갈 수 있게 된 건 14년 전 “섬 주민들의 이동권도 내륙에 사는 주민들과 균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섬 출신의 한 지방의원의 절실하고 끈질긴 집념으로 만들어진 ‘인천시 섬 주민 뱃삯지원 조례’ 덕분이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서해 최북단 백령도 출신 김필우 당시 인천시의원은 당선 뒤 처음 열린 9월 정기회의에서 섬 주민들의 뱃삯 문제를 들고나왔다. 그는 ‘주민은 누구나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는 시설이나 재정을 균등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고 행정 편의를 균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는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여객선 외에 대체 교통수단이 없으니 대중교통 요금으로 접근해 나머지 요금을 시에서 지원해 줄 것”을 인천시에 요구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해운법을 근거로 “여객선 운임은 이용자 부담 원칙이라 지원할 수 없다”며 일축했다.

이에 맞서 김 의원은 “섬 주민에게 지원을 못 하겠으면, 인천시가 지하철과 시내버스 업체 등에 운영비 등으로 매년 1천억원 넘게 지원하는 예산도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인천 지하철 요금의 70배(당시 지하철 요금 600원)가 넘는 뱃삯을 내고 다니는 백령도 등 서해 5도서 섬 주민들도 당당한 인천시민”이라며 뱃삯 지원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결국 인천시는 김 시의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해 ‘서해 5도서 해상운임 및 실태조사’ 용역을 전문기관에 맡겼고, 용역 결과를 토대로 최북단 접경지역 내 서해5도서(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 및 여객선을 2회 이상 바꿔 타는 도서(덕적면 도서, 강화군 삼산면 서검도)에 사는 주민들의 여객선 운임을 지원하는 ‘인천광역시 서해 5도서 등 주민 여객선운임 지원 조례’가 2003년 11월17일 제정됐다. 이 조례에 의해 2004년 6월부터 백령도 등 서해 5개 섬 주민들은 인천시에서 30% 지원을 받고 선사에서 20%를 할인받아 뱃삯의 50%만 내면 됐다. 백령도 주민은 당시 4만2천원인 뱃삯의 50%인 2만1천원, 연평도 주민은 2만1천원인 뱃삯의 절반인 1만500원만 내면 뭍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이 조례는 2004년 11월 일부 개정을 통해 2005년 1월부터는 뱃삯의 30%에서 50% 지원으로 지원 금액을 늘리고 서해 5도 등에서 인천 시내 섬 모든 지역으로 대상도 확대했다. 김필우 전 시의원은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인천~백령도 간 뱃삯을 1만원 이하로 내려 마음 편히 인천을 오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했더니 백령도 주민들조차 ‘시의원이 되고 싶어서 사기 친다’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원 조례를 만들어 뱃삯이 가장 많은 백령도 주민들도 뭍으로 가는 데 1만원 이하로 낮춰 공약을 지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천시 섬 주민 뱃삯지원 조례’가 처음 만들어진 뒤 경상북도가 울릉도 주민 뱃삯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인천시 조례는 다른 섬 주민들에게 뱃삯 지원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한광원 당시 국회의원(인천 중동옹진)은 ‘인천시 조례’를 참조해 ‘전국에 있는 모든 섬 주민 뱃삯의 일부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해 2005년 6월30일

개정했다. 이 법의 개정으로 2006년 2월1일부터 운임 상한제가 시행되어 제주도 본도를 제외한 모든 섬(8개 광역자치단체 250개 섬)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최고 5천원(현재는 7천원)의 뱃삯만 내면 뭍을 오갈 수 있게 됐고, 2014년부터는 차량 운송비 20%를 지원받고 있다. 법률보다 하위 개념으로 여겨지는 인천시 조례가 전국 섬 주민에게 뱃삯을 지원하는 법률 제정의 씨앗 구실을 한 것이다.

인천발전연구원 김운수 연구위원은 “버스나 항공보다 2.5~3.7배 비싼 뱃삯을 다른 운송수단 요금에 맞게 낮춰야 한다”며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은 배를 대중교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도 준공영제 형태로 바꿔 누구나 쉽게 섬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섬들이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인데도 뱃삯을 지원한 뒤 여객선을 이용하는 섬 주민이 연 30만명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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