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금천구청 1층에 있는 공정무역 매장 ‘민들레’에서 김혜숙 민들레워커협동조합 대표가 공정무역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제공
지난 1일 여권을 발급하기 위해 서울 금천구청 민원실을 방문한 배명숙(62)씨의 눈에 1층 가게에 놓인 아크릴 수세미가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수세미를 사려고 했는데 색깔까지 예뻐 2개를 골랐다. 옆에는 ‘공정무역 계피가루’라고 적힌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공정무역이 뭔가요”라고 묻자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무역입니다. 부모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하게 되니까 노동착취 당하던 어린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 이 계피가루는 베트남 고산족이 자연재배 농법으로 키우고 말린 건데, 빵이나 떡에 뿌려 먹으면 감기 예방에도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가게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공정무역 매장 ‘민들레’다. 14.4㎡(약 4.4평)의 작은 공간에는 커피, 설탕, 생활소품 등 공정무역 제품과 수세미, 손수건, 인형 등 지역의 경력단절 여성들이 직접 만든 제품이 놓여 있다. 바로 옆이 민원실이라 지나가던 시민들이 많이 들른다.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기업 ‘민들레워커협동조합’의 김혜숙 대표는 “대부분 손님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몰라 제품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다. 아직은 한달 매출이 400만원에 불과하지만, 공정무역의 의미와 가치를 알릴 수 있어 참 좋다. 다른 구청들도 공익적 사업에 공공장소를 적극 개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도봉구도 지하철 창동역에 있는 ‘도봉구 사회적경제기업 홍보·판매관’에 공정무역 코너를 신설했다. 이처럼 서울 자치구들이 공정무역 알리기에 적극 나서면서 어렵고 거창하게 느껴졌던 공정무역이 마을 차원의 풀뿌리 생활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1월14일 은평구 은평뉴타운도서관에는 공정무역 자판기 ‘페어컵(Fair Cup)’이 설치됐다. 공정무역 자판기가 설치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은평구와 공정무역 전문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는 자판기 외관에 공정무역에 대한 설명을 적고, 네팔, 페루, 우간다 등에서 생산된 커피, 초콜릿, 견과류 제품을 재미있는 이름과 포장으로 디자인했다. 위치도 1층 어린이도서관 옆으로 정했다. 자판기를 본 어린이들은 공정무역에 대한 질문을 부모에게 쏟아냈다. 이용자의 관심이 높아지자 도서관은 지난해 12월 ‘공정무역 토크’를 개최한 데 이어 겨울방학 독서교실 주제도 공정무역으로 정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도서관에 설치된 공정무역 자판기 ‘페어컵’을 한 어린이가 이용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 제공
서울 성북구는 지난해 8월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를 성신여대 근처 골목길에 열었다. 서울 성북구 제공
지난해 12월까지 45일 동안의 시범운영이 끝나자 서울 영등포구 문래청소년수련관, 강원도 횡성 민사고 등에서 ‘페어컵’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이혜란 아름다운커피 팀장은 “공정무역 제품 유통망이 부족해 무점포 방식의 자판기를 시범적으로 운영해봤는데, 공정무역에 대해 잘 모르거나 딱딱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 앞으로 적극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는 지난해 8월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Fair Round)’를 성신여대 근처 골목길에 열었다. 지상 2층 규모로 2층은 공정무역 제품 판매장으로 운영하고, 1층 체험공간에서는 요리, 수공예, 커피 등 다양한 공정무역 강좌를 연다. 예를 들어 요리교실은 공정무역 견과류와 올리브오일 등 재료로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자수교실은 공정무역 베틀직조 원단에 인도 치칸카리 기법으로 수를 놓는 식이다.
지금까지 15차례 열린 강좌에 모두 600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손현정 페어라운드 총괄매니저는 “처음에는 공정무역에 대해 잘 모르고 단순히 요리나 자수를 배우고 싶어 신청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체험 위주의 강좌를 통해 윤리적 소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페어라운드는 이달부터 성북구의 학교·주민센터·기업 등으로 찾아가는 교육을 새롭게 시작한다. 지난해 공정무역 서포터즈(자원봉사자) 양성 교육을 두 차례 했는데, 서포터즈 일부도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민들레워커협동조합은 지난해 금천초등학교와 한울중학교에서 공정무역 수업을 20차례 진행했다. 새 학기에는 금나래초등학교와 공정무역 수업을 논의하고 있다.
페어라운드를 위탁 운영하는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이미영 대표는 “10년 이상 공정무역을 해오면서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사업은 처음인데, 일을 해보니 주민과의 관계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국내 공정무역이 풀뿌리 차원의 고민을 이제 시작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