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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로 찢긴 성주·김천 민심 또 찢는 ‘악마의 속삭임’

등록 2017-04-18 09:15수정 2017-04-18 09:31

[밥&법] ‘사드 보상사업’ 성주·김천 부글부글

사드 부지 성주골프장 주변 지역
국방부, 군사시설 보호구역 추진
성주군이 의견서 제출 미루자
고속도로·경전철 건설 등 약속

사드 반대 주민 강력 반발
“군수가 정부와 공모해 주민 이간
고속도로는 이미 확정된 사업
경전철은 수요 적어 부도 우려”

한쪽선 “뭐라도 받으면 다행” 이견
레이더 앞쪽 김천은 지원 배제 논란
“사드는 후손에 짐…정부 지원과 못바꿔”

경남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 등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각종 지원책(돈)이다. 국가가 선의로 포장한 돈은 마을 공동체를 분쟁·불신으로 갈라놓는 흉기로 돌변하곤 한다. 최근 정부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는 경북 성주 주민들에게도 대구~성주 고속도로, 지역 특산품 ‘성주 참외’ 군납 같은 보상사업을 내놓았다.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드 배치 반대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강력한 주민 반대에 부닥친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드 배치 반대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강력한 주민 반대에 부닥친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꺼내들었다.

“사드 들어오는 성주골프장에서 한 발 앞으로 가면 김천이고, 한 발 뒤로 가면 성주인 기라. 그런데 와 성주만 보상해주니 마니 난리들인지….”

지난 13일 경북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 손영화(86)씨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는 “저 너머에 성주골프장이 있다”며 마을회관 뒤쪽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그는 “성주는 보상을 해주고 김천은 아무것도 없다던데, 와 살기 좋은 동네에 저런 걸 갖다놓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그의 집 대문에는 ‘사드 반대’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노곡리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배치되는 옛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골프장)에서 북쪽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성주골프장은 김천과 성주의 경계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있다. 성주골프장에서 북쪽으로 100m부터는 행정구역이 김천 노곡리다. 이날 노곡리 마을회관과 주민들의 집 곳곳에는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적힌 파란색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김천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가 강했던 곳이다. 김천 바로 동쪽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경북 구미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천 주민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김천·구미가 잘된다”면서 표를 몰아줬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북 전체에서 80.82%, 김천에서는 83.41%를 받았다. 성주 주민들도 박 전 대통령에게 표 86%를 몰아줬다.

손영화씨는 “김천과 구미 좋아질 거라고 박근혜 찍어놨더니만 사드만 왔다. 실제 피해를 받는 김천 주민들에게는 보상 이야기도 없다. 사람들이 오죽하면 대통령을 저렇게(구속) 해놨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에서 만난 박태정(66) 이장도 사드 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성주에 정부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더러웠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사드의 주소는 성주지만, 사드(레이더)가 바라보는 곳은 김천이다. 하지만 정부는 성주하고만 협의를 하고 김천은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이장은 이어 “사드는 북핵을 막지 못할뿐더러 유사시 폭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항상 불안감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짐을 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속도로 건설 같은 정부 지원과 맞바꿀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반대 김천시민 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박희주·최용정·김종경·김대성·유선철)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민 박경범(53)씨는 “성주가 정부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발표한 내용을 봤는데, 대부분이 도로 건설 등 이미 추진하는 사업이고 사드 때문에 특별히 지원받는 것은 없어 보인다. 성주군수가 주민들을 현혹하려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주군은 지난 4일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지역 현안사업의 정부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 성주군이 밝힌 정부 지원은 △대구~성주간 고속도로 건설(8000억원) △대구~성주간 경전철 건설(5000억원) △대구~성주간 국도 30호선 병목지점 교차로 개설(120억원) △초전면 경관 정비와 전선 지중화 사업(25억원) △성주 참외 군부대 납품 △북한이탈주민 정착 교육시설인 제3 하나원 건립 우선 지원 등이다. 하지만 가장 큰 지원사업인 대구~성주간 고속도로 건설은 지난 1월1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2016~2020년)에 이미 포함된 것이다. 국토부는 당시 8698억원을 들여 25㎞ 길이인 성주~대구간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성주골프장과 주변지역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한다. 국방부는 2월28일 성주군에 공문을 보내 3월6일까지 관련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는 관계 행정기관장의 의견서를 받아 국방부 장관이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성주군은 계속 의견서 제출을 미뤘고, 그 와중에 정부로부터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정부 지원 약속을 받은 성주군이 조만간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에 찬성하는 의견서를 국방부에 낼 것이라고 본다.

‘원불교 성지 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오후 2시 성주군청 군수실에서 김항곤 군수와 이 문제를 놓고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원불교 대표단은 김 군수에게 “성주군이 초전면을 국방부에 넘기는 대가로 정부 지원사업을 약속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이는 성주군 내 어느 땅에도 사드 배치는 절대 안 된다며 혈서와 삭발로 약속했던 성주군수님의 입장과 배치된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에 대한 의견서 제출을 거부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 군수는 “나도 사드가 배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군수로서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국방부에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해야 한다고 요청하겠다”고만 했다.

국방부가 성주 한중간인 성산포대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해 7월13일이었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이에 반발해 삭발을 하고 주민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와 사드 반대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김 군수는 지난해 8월22일 군청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부는 성산포대를 제외한 제3의 적합한 장소를 결정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그해 9월30일 사드 배치 예정지를 성주읍 성산포대에서 성주 초전면 성주골프장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김 군수는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성주 주민들은 17일까지 성주읍 경산리 성주군청 건너편 주차장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279일째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김천 주민들도 평화동 김천역 광장에서 240일째 촛불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13일 성주군 성주읍을 두 시간 돌아봤지만 정부의 지원 약속을 환영하거나 반대하는 펼침막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사드와 관련된 문제라면 주민들의 찬반 펼침막이 경쟁적으로 나붙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길에서 만난 주민 10명에게 정부 지원에 대해 물으니 절반은 모르거나 관심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주민 김아무개(61)씨는 “아직도 성주에서는 사드 배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주민이 나뉘어 있다. 군수도 제3지역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뭔가 말을 하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사드 배치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뭐라도 하나 받으면 다행인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다른 주민 박아무개(54)씨는 “어차피 언젠가는 만들어질 도로, 좀 일찍 놓는다고 성주가 뭐 그리 크게 발전하겠느냐. 어차피 주민들에게 개별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며 정부 지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일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군청 건너편 주차장 한쪽에는 성주·고령·칠곡 지역신문인 <경서신문> 4월11치가 놓여 있었다. 신문 1면 하단에는 ‘군민을 기만하는 사드 배치 보상사업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광고가 크게 실렸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 낸 광고다.

광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근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정부로부터 9가지의 보상사업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사드 배치와 상관없이 이미 확정되어 있던 사업이거나 사업성이 없어 부도가 날 사업일 뿐입니다. 형제이고 이웃인 초전 주민들을 볼모로 삼고, 국민의 안전을 침해하는 대가로 얻는 참외 군납은 성주 군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행위입니다. 제3부지를 제안하고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해 곤경에 처한 군수가 국방부와 공모하여 짜깁기하듯이 만든 졸속안일 뿐입니다. 이 사업은 주체도 없고 부족한 수천억원의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습니다. 성주군수는 의견서 제출을 거부해야 합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에 동의하는 것은 국방부의 불법적인 사드 알박기에 부역하는 행위입니다.’

임순분(63) 소성리 부녀회장은 “사드가 배치되면 성주에 누가 와서 살 거라고 도로를 놓고 경전철을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단 한번도 소성리를 찾아와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군수가 일방적으로 이런 발표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성주읍에 사는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결국 소성리 주민과 사드 반대 주민을 다른 주민과 나누려고 하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 박수규(54·대가면)씨는 “성주~대구간 고속도로, 경전철 등이 만들어지면 대구 사람들이 성주에 와서 소비를 할지, 성주 사람들이 대구에 가서 소비를 할지 의문이다. 또 의정부와 부산·김해 경전철의 경우에는 수요가 부족해 적자가 크게 났는데, 성주도 섣불리 경전철을 만들었다가 적자가 나면 고스란히 세금으로 이를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특히 한달 뒤면 정권도 바뀌는데, 바뀐 정부에서 이전 정부가 대통령도 없는 상태에서 한 약속을 지켜줄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고 얻을 것은 얻자는 주민들도 꽤 있다. 이재복(76) 성주군 사회단체협의회장은 “정부가 약속한 대구~성주 국도 30호선 병목지점 교차로 개설은 국도 전체를 현재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 대구~성주 국도는 교통체증이 매우 심한데 단기적으로는 병목지점 교차로 개설뿐만 아니라 국도 확장을 먼저 하고, 이후 장기적으로 대구~성주 경전철이 건설돼야 한다. 정부가 최대한 빨리 가시적 성과를 내놔야 성주 군민들이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도기 성주군 기획감사실장은 “정부 지원사업은 성주군의 숙원사업이며 공문을 통해 약속을 받았다. 도로 건설은 국토부 계획에 포함돼 있는 것은 맞지만 예비타당성 조사 등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가 있다. 성주와 대구간 교통이 편리해지면 직장은 대구에 있고 공기가 좋은 성주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제3 하나원도 성주에 설립되면 성주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이 생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구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천 성주/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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