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세종 열사 추모비가 세워진 전북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이 대학 2학년 정상원씨가 신군부에 희생된 선배의 정신을 기억하자며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너, 민주의 들불이여. 건지벌의 영원한 넋이여...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
전북대학교 민주광장에 세워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최초의 희생자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에 새겨진 글귀다. 18일 오전 이 열사 추모비를 찾았다.
이 대학 정상원(20·정치외교학과 2년)씨가‘ 5·18민중항쟁’과 ‘이세종 열사를 기억하며’라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정씨는 “선배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당했는데 그 고귀한 정신을 잊으면 인간이 아니다. 학우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추모비 앞에 섰다”고 말했다. 사회참여 동아리 회원인 정씨는 “아직 오전이어서 회원들이 모이지 않았다. 오후에는 다른 회원과 함께 올해 5·18기념식장에서 제창을 허락받은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을 틀어놓고 추모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열사 추모비를 지나던 신입생 손종호·송은율(기계공학과 1년)씨는 “광주 출신이어서 5·18의 의미가 남다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노력했던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학교 민주광장에 세워진 고 이세종 열사 추모비에 조화가 놓여 있다.
앞서 17일에는 5·18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와 전북대총학생회 등이 이 열사 추모식을 열었다. 이 열사 후배로 이날 사회를 맡은 김차순(57)씨는 “5·18운동과 관련해 유공자가 선정되는 등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그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애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완벽한 청산이 아직 이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세종(당시 20·전북대 농학과 2년 재학) 열사는 80년 5월17일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18일 0시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 그 뒤 18일 새벽 6시께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열사의 죽음을 단순 추락사로 발표했다.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학술세미나에서 “5·18 최초의 희생자는 이세종”이라고 밝혔고, 전북대는 이 열사를 역사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1985년 제1학생회관 앞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 열사는 1998년 10월에야 광주민주화운동보상심의회의 결정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광주 북구 망월동 신묘역에 안치됐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라고를 졸업한 그는 추모비가 2002년 총동창회 주관으로 전주시 송천동 모교 교정에도 세워졌다.
한편 오는 20일 오후 2시 전주 우림중학교 체육관에서 ‘청소년이 생각하는 5·18’을 주제로 원탁토론이 열린다. 글·사진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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