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을 아는가.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이 2차대전 패전 뒤 일본에 사는 조선(한반도) 출신의 한국인들에게 붙인 표지가 바로 조선적이다. 조선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관련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한국 방문이 사실상 자유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보수정부 9년간 이들의 고국 방문은 사실상 가로막혔다. 시민단체와 법률가, 학자들이 재일동포와 함께 문재인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내 고향 제주도에 안기고 싶어요. 선조의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고 우리 아이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프고 억울한 건 일본이나 외국(사람들)이 아닌 고향 사람들이 주는 차별입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차별에 지쳤고 충분히 아팠습니다. 이젠 고향 사람들이 제발 우리를 짓밟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 실현을 위한 모임’(이하 모임)이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자유로운 국내 방문을 요청하기 위해 개설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대화방에 재일동포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글이 줄을 이었다. 모임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바람을 밝힌 뒤 개인 1210명과 15개 단체 등의 서명을 받은 ‘조선적 재일동포의 조건 없는 자유왕래 실현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국민인수위원회에 접수시켰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 실현을 위한 모임이 지난 12일 ‘조선적 재일동포의 조건 없는 자유왕래를 위한 정책제안서’를 서울 종로구 국민인수위원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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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고향 지난 12일 <한겨레> 기자가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를 찾았을 때 재일동포 3세 김태식(38) 연구원은 마침 부인(36)의 한국 방문을 허가해 달라는 민원을 외교부 누리집에 신청하고 있었다. 같은 재일동포 3세이자 제주도가 고향인 그의 부인도 이날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고향을 방문하고 남편을 만나겠다’며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김 연구원은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아내가 ‘조선적’을 가지고 있어 한국 입국에 어려움이 있다. 아내는 조선적인 아버지가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으니까 자신도 바꾸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고향에 가고 싶은 아버지가 참고 있는데 딸의 입장에서 바꿀 수 없다는 마음의 부담이 큰 것 같다. 아내가 그리던 고향을 방문해 성묘하고, 남편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며 한국 입국 허용을 호소했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한반도 출신자
외국인 등록 때 ‘조선적’ 일괄 부여
북한 국적 아니라 ‘조선사람’이란 뜻
한국 입국하려면 여행증명서 필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신청하면 모두 발급
보수정권서 발급률 급락…작년 34%
인터뷰 때 한국 국적 취득 요구하고
애국가·서약서 강요 등 인권 침해도
“자유 왕래 실현” 국민인수위에 제안
발급심사 완화 등 법 개정 요구 담겨
조선적이던 김 연구원은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때 처음 방한해 9차례 오간 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한국 국적을 택했다. 당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있던 김 연구원은 동창생 결혼 때문에 일본에 갔다가 영사관 쪽에서 더는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자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낸 조선적 재일동포 3세 정영환 일본 메이지학원대 교수도 지난해 7월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을 추진했으나 외교부가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다. 앞서 2015년 4월에 입국해 제1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한 제주 출신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91)씨가 그해 여름과 가을 서울과 제주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입국이 거부되는 등 한 사람에 대한 입국 허가 잣대도 오락가락했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 실현을 위한 모임 회원들이 지난 12일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입국과 부당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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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의 유산, ‘조선적’ 조선적은 20세기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 강점의 고통스러운 유산이다. 조선적은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일본에 남은 한반도 출신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부여한 외국인 등록상의 표시다. 국적이라기보단 일종의 지역적 기호다. 일본 정부는 1945년 선거법 개정으로 재일동포의 참정권을 박탈한 데 이어 1947년 5월 공포한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재일동포들을 외국인으로 등록시키면서 편의상 ‘조선 사람’이라는 뜻에서 조선적으로 표기했다. 이는 남북한 정부 수립(1948년 8월15일·9월9일) 이전의 일로, 당시 재일동포들은 모두 조선적으로 등록됐다. 따라서 일부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조선적=북한 국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어 일본 정부는 2차대전 연합국과 체결해 1952년 4월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재일동포의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해 무국적자로 만들었다. 이후 진행된 1966년 1월 한일법적지위협정 체결로 ‘한국’ 국적자들에 한해 협정영주권 신청을 받아 안정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처럼 보이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조선적 출신으로 재일동포 문제를 연구하는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한국 정부는 사실상 ‘조선적’을 ‘북한 국적’으로 간주해 관습적으로 국적 변경을 요구해왔다”며 “조선적을 둘러싼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일본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에 규정된 재일동포들의 역사적 현재적 위치를 보여주는 진행형의 문제”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실(제주시 갑)이 외교부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2015년 말 기준 재일동포 가운데 한국 국적은 45만7700여명이고 조선적은 3만3900여명이다.
조선적 재일동포가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북한과 가까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 직접 관련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친척이나 가족 가운데 과거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친지가 있다는 이유로 조선적을 유지하는 동포도 있다. 총련과는 무관하게 통일된 조국의 국민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 조선적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재일동포 3세대로 내려오면 신념보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김태식 연구원은 “(한국 국적을 택할 때) 마음의 갈등이 많이 있었다. 조선적을 바꾸지 않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친구들한테 미안함이 컸다”며 “아버지는 지금도 조선적이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바꾸고 싶지 않은 거다. 자존심의 문제 같다”고 말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은 “남도, 북도 식민지 이전 자기 조국이라는 성향도 있고, 북한에 가족들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그분들하고 연락이 끊기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정치적인 신념을 갖고 있거나, 바꾸기 싫어서 안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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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 이후 막힌 고향으로 가는 길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0조(외국 거주 동포의 출입보장)는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 거주 동포가 남한을 왕래하려면 여권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무국적 재외동포의 입국을 보장하는 취지의 제도이지만, 조선적 재일동포에겐 입국을 번번이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실제로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여행증명서 신청과 발급 건수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국 정부가 조선적 재일동포를 북한 국적자로 취급하면서 입국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아예 한국 방문을 포기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강창일 의원실이 지난해 외교부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여행증명서 신청·발급 건수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3329건 신청에 3358건이 발급돼 100.8%(2004년 신청해 2005년 발급된 건수 포함)의 발급률을 보였고,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는 2033건 신청에 2030건이 발급돼 99.8%의 발급률을 보였다. 신청만 하면 거의 모두 발급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 정책을 본격적으로 뒤집기 시작한 2009년에는 신청 건수 1497건에 발급 건수 1218건으로 줄었다. 2010년엔 신청 건수가 401건으로 전년도에 견줘 4분의 1 가까이 줄었고, 발급 건수도 176건(43.8%)으로 크게 줄었다.
이처럼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여행증명서 발급이 크게 어려워지자 2011년 이후에는 신청 건수 자체가 연간 100건 이하로 감소했고, 발급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의 경우 8월까지 26건 신청에 9건만 발급돼 발급률은 34.6%로 역대 가장 낮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조선적 재일동포의 자유로운 국내 입국이 사실상 막혔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행증명서 발급 과정에서 한국 국적 취득을 강요하거나 고압적인 인터뷰를 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적잖다. 한 재일동포는 “영사관에서 여권신청 때 애국가 강요, 서약서 강요 등을 겪는다. 내 나라 내 고향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 실현을 위한 모임이 지난 12일 서울 세종로공원 광화문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자유왕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상구 킨(KIN) 지구촌동포연대 사무국장은 “입국 거부 사례가 늘면서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점차 신청조차 하지 않게 됐다. 어차피 못 갈 테니까 자포자기해서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조경희 교수도 “여행증명서 거부에 따른 설명이나 근거가 없는 등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재일동포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 내부보다 더 강한 과잉 안보논리가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환 팀장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들은 자유롭게 올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10년 가까이 방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의 김명준 사무국총장은 “‘조선’이라는 기호가 이제 와서 재일동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일동포 가운데는 고령인 분들이 많지만 고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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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에 나선 시민사회 12일 국민인수위원회에 정책제안서를 낸 ‘모임’은 지난해 7월 조선적 재일동포 정영환 교수의 입국 거부를 계기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민족문제연구소,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킨 지구촌동포연대, 서승 전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등 단체와 개인이 참여해 결성됐다. 모임이 이날 낸 정책제안은 △외국 거주 동포의 여행증명서 발급 심사 완화와 유효기간 연장 신청을 가능하게 하는 여권법 개정 △재외동포 대상에서 제외된 외국 거주 무국적 동포를 포함하도록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 △여행증명서 신청 과정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외교부의 행정지침 마련 등을 담았다.
송상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은 “외교부가 자신의 재량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입국 심사 과정에서 애국가나 서약서 강요, 또는 모욕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불법적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송 소장은 “부당한 이유로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부돼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동포들이 많다. 외교부가 이런 문제를 깊이 인식한다면 입법 이전이라도 전향적으로 하루빨리 인권 친화적인 행정지침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며 “여행증명서 발급이나 여권 심사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