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갈등해결센터가 2013~2016년 서울시에 접수된 총 906건의 집단민원 중 기피시설 관련 민원 67건을 분석해보니, 1위가 환경·공원 분야로 재활용 시설, 폐기물 처리 시설, 빗물저류조 등이었다. 2위가 어린이집, 장애인 복지 시설 등 보건복지였다. 예전엔 1위를 차지했던 도로교통은 이제 11건으로 감소 추세인 반면, 환경·공원 및 보건·복지 분야에 대한 집단민원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항을 겪고 있는 분야는 단연 임대주택이다. 2012년 서울시는 시유지 17곳을 활용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을 세웠으나 2017년 10월 현재 5곳만이 준공됐거나 준공을 앞두고 있다. 구의유수지를 활용해 행복주택을 건립하거나 영등포고가차도 아래 긴급구호용 주택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여러 해 갈등 끝에 좌절됐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을 비롯한 여러 임대주택 사업들은 ‘소셜믹스’에 대한 거부감의 덫에 잡혀 있다. 소셜믹스란 여러 세대와 계층이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논문 ‘소셜믹스형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도 연구’(이태용)를 보면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논리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임대주택 관련 기사 댓글의 주요 단어들의 연관관계를 분석해보니, 2016년 소셜믹스와 임대주택에 대해 가장 많이 쓴 연관어는 ‘생활-수준’, ‘소셜믹스-불편함-임대’, ‘집값-떨어질까봐’ 같은 단어들이었다. ‘임대세대도-관리비’, ‘임대세대는-임대세대-끼리’, ‘소셜믹스-이론-좋지만’, ‘섞이면-안된다고-본다’ 등도 자주 언급됐다. 또 2012~2016년 댓글을 연도별로 비교해보면, 다른 공공임대주택은 부정적 인식이 많이 줄었지만 영구임대주택은 ‘못살’, ‘교육’, ‘양아치’, ‘행패’ 등의 연관어가 등장해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했다.
기피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대응은 체계적이다. 서울 마포구 창전1구역 지역개발조합은 2019년 2월 완공 예정인 재건축아파트 예정지 옆에 이랜드가 사옥을 헐고 민간 청년임대주택을 짓기로 하자 홍보회사를 고용해 청년임대주택을 막기 위한 여론전에 나섰다. 이 조합은 전문 용역사를 통해 인근 지역 주민 5000명의 반대 서명을 받기도 했으며 교통영향평가, 청년주택과 이격 거리 검토 내용들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돌렸다. 전직 광고회사 마케터로 일했다는 최형철 조합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왜 청년임대주택을 집값 비싼 역세권에 굳이 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는 ‘떼법’을 쓰지 않는다. 서울시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을 때까지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주민들로 이뤄진 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내곡지구 아우디 정비공장 설립 반대 운동으로 힘을 얻어 그뒤로도 한국콜마연구소, 호텔 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재건축 추진 당시 결성된 서울 여의도 아파트 소유자 모임 카페 등은 재건축 추진뿐 아니라 노량진 수산시장과 연결 다리, 제물포 방향 간선 도로 등 문제에서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송파실버케어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이들도 대부분 내년 잠실 헬리오시티 아파트 입주 예정자 모임이다.
지역 기피시설 갈등은 우리 사회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15일 열린 2017서울갈등포럼 서울시 제공
외국의 경우, 미국은 매년 지역 기피시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조사해 갈등 지수로 정리한다. 국내 상황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차이점은 마트와 대형 영업시설에 대한 반대가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월마트에 대해 반대지수가 찬성지수보다 높고, 대형 쇼핑몰은 찬반이 반반가량이다.
반면, 한국은 기숙사, 어린이집, 재래시장 등이 부동산값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강해 기피시설 취급을 받는다. 훨씬 더 개발주의에 경도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롯데 쇼핑몰 입점을 막는 망원시장 불매운동을 펼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갈등해결센터 강영진 공동대표는 “주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나 재건축조합으로 모인 주민들이 재건축이 완성될 때까지 지역에 기피시설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적극 관리하는 추세”라며 “예전엔 정부가 재건축을 할 때 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도 얼른 함께 지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불가능하다. 이들은 기피시설뿐 아니라 극장, 어린이집도 반대하며 자신이 원하는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개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보력과 실행력을 갖춘 이들이 기피시설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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