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라는 미명으로 폭력을 일상화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해 가정폭력에 준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데이트 폭력 논란이 있었던 마마무 뮤직비디오 ‘데칼코마니’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에 사는 여성 10명 중 9명은 사귀던 사람에게 언어·신체·정신적 폭력 등 ‘데이트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46.4%는 가해자와 결혼했고 이중 17.4%는 “데이트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서울시가 서울에 살고 있는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여성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데이트 폭력은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하거나 옷차림을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동통제(81.6%)였다. 그 다음은 언어폭력(61.2%), 성적 폭력(54.8%) 순이었다(복수응답). 성적 폭력은 내가 원하지 않는데 몸을 만지는 경우(44.2%)부터 완력이나 흉기를 사용해 성관계를 하거나(14.7%), 원치 않는데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 사진을 찍는 일(13.8%)까지 있었다. 언어·신체적 폭력을 당한 이들은 대부분 “헤어지고 싶었다”거나 “무기력,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답했지만 설문에 답한 기혼여성 742명 중 341명(46.4%)은 “데이트폭력을 휘둘렀던 그 사람과 결혼했다”고 답했다.
그들은 왜 자신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사람과 결혼했을까? 이번 조사에 참여한 ㄱ씨는 헤어지자고 하자마자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헤어지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협박하고 때렸다. 신고하면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겠다고 해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다. 지금 ㄱ씨는 상담소를 찾아 치료 받으며 법률적 도움을 얻고 있다.
2014년 미국 마이애미주 배리대학에서 300명의 여성들이 가정폭력 및 데이트폭력의 실상을 알리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데이트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신체적 폭력과 달리 행동통제나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각각 36.7%와 30.3%가 “당시엔 이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는 응답도 많았다. 그러나 행동통제로 분류된 피해자들은 단순히 간섭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늘 휴대폰, 이메일, 에스엔에스(SNS)까지 점검 받았으며 하던 일을 남자친구의 요구에 따라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의 원인으로는 58.7%가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을 꼽았다. 20대 여성 15.9%는 ‘여성혐오 분위기’를 지목했다. 조사를 진행했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희영 연구위원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와 결혼한 경우는 50대 여성이 52%로 가장 많았고, 20대는 37.4%였다. 20대가 자신이 당한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성평등 인식의 발전을 평가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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