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동료들 대피시키고 다른 사람 구하려 다시 불길로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덮친 화마에 9명이 목숨을 잃은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 현장에서 30대 전산실 직원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2일 세일전자 노동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 회사 전산실 민아무개(35) 과장은 불이 난 전날 오후 3시43분께 4층짜리 공장 4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있다가 연기를 목격하고, 최초로 화재 발생 사실을 119에 신고했다. 민씨는 다시 4층으로 올라가 “불이야”를 외치며 직원들을 대피 시켰다.
그러나 민씨는 불이 난 4층으로 다시 들어간 뒤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전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노동자 9명 가운데 7명이 민씨처럼 4층에서 미쳐 불길을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사고 당일 숨진 노동자 5명이 안치된 인천 길병원을 찾은 세일전자 안아무개 상무이사는 “불이 난 것을 발견한 민씨가 전산실에 들어와 대피하라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전산실 사무실이 있는 4층에서 자력으로 탈출한 직원이 이런 사실을 말해줘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화재 발생 당시 공장 내부에는 전체 직원 130명 가운데 주간 근무자 75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불이 난 4층에서는 23명이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7명은 미처 대피하지 못해 숨진 채 발견됐고, 2명은 유독가스를 피해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비보를 듣고 인천길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유족은 망연자실했다. 동료들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오열했다.
이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이아무개(31·여)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친척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아버지는 “불이 난 뒤 딸이 엄마에게 불이 났는데, 안에 갇혀 있다. 살려달라며 전화했다. 그러다가 통화가 끊겼다. 사고 소식을 듣고 세월호 희생자를 떠올리게 됐다”며 비통해 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보받은 김아무개(39)씨의 어머니는 “7년째 일하고도, 정규직 전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며 대성통곡했다.
이날 늦은 밤 빈소를 방문한 세일전자 안재화 대표이사를 비롯해 회사 임원들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안 대표이사는 “건축물 불법 개·증축이나 소방법 위반 사항은 없었다. 소방 훈련도 했다. 희생자를 위해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후 3시43분께 이 회사 공장 4층 전자회로 검사실과 식당 사이 복도 천장에서 난 불로 노동자 9명이 숨지고, 6명(연기흡입 소방관 1명 포함)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22일 오전 10시께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합동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추현만 인천 공단소방서장은 “4층 검사실과 식당 사이 천장에서 불꽃과 함께 시뻘건 불덩어리가 떨어졌다는 최초 목격자 진술이 있었다”며 “발화 추정 지점을 중심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하 권지담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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