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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사과는커녕 소송비용 내라는 총리실

등록 2020-08-25 04:59수정 2020-08-25 16:20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가 2010년 7월 검찰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가 2010년 7월 검찰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민간인 사찰에 대해 여태껏 단 한번의 사과도 없던 국무총리실이 되레 사찰 피해자에게 소송 비용을 내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66)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발단은 지난 7월 초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김씨에게 보낸 공문에서 비롯됐다. 국무조정실은 김씨에게 ‘소송 비용액 확정결정에 따라 소송 비용의 상환을 요청한다’며 총 2521만921원을 납부하라고 통보했다.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소송 비용의 80%를 김씨가 부담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었지만, 국가의 잘못을 다투는 공익소송조차 그 비용을 피해자에게 부담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 법률 개정안이 제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벌인 민간인 사찰로 인해 대표로 있던 직장에서 강제로 사직을 당했던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고, 지난해 9월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소송 비용 가운데 김씨가 80%, 국가가 20%를 부담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2016년 대법원 최종 확정 판결에서 인정된 20%의 배상금을 제외한 80%의 청구 금액에 대한 소송 비용을 원고인 김씨가 부담하라는 취지였다.

국무조정실의 소송 비용 상환 요청은 이러한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확정된 소송 비용과 관련해 국가에 지급하라는 납부 안내를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보냈을 뿐, 우리가 자의적으로 액수를 감면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애초에 국가가 잘못한 것을 밝혀달라는 공익적 성격의 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의 인정 비율에 따라 피해자에게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소송 비용 부담은 소송 남발을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결과적으로 공익소송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며 “미국은 인권에 관한 소송, 소비자보호 소송, 고용관계 소송, 환경보호 소송 등 공익소송만은 패소할 경우라도 소송 비용 부담을 완화해주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one-way fee shifting)를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9일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공익소송에서 패소할 경우에도 소송 비용을 감면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김씨는 “민간인 사찰의 국가폭력으로 인해 아직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옳은지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을 받거나 위헌소송을 내는 등의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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