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문을 여는 위안부 피해자 고 안점순 할머니를 추모하는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내부.
“이제라도 말 한마디, 사죄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인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안점순(1928~2018) 할머니는 죽기 전에 “억만금을 준들 청춘이 돌아오겠어. (사과한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다. 이거지”라는 말을 남겼다. 끝내 일본의 사과를 보지 못한 채 2018년 숨진 안점순 할머니를 기억하는 추모관이 마련됐다.
수원시는 18일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설치 완료해 다음달 1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1층 문화관 미술실 48㎡에 마련된 전시실은 안점순 할머니의 생애와 경험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과거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시설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름을 딴 추모·전시 시설은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이 처음이다.
일본 강점기 서울 마포 복사골에서 ‘몇살부터 몇살까지 여자아이들은 다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엄마 손을 잡고 나갔던 어린 순이(안점순 할머니의 아명)는 어머니를 뒤로 둔 채 트럭에 실려 떠났다.
평양으로, 중국 베이징과 톈진으로 이동해 나무도 없고 누런 모래가 뒤덮인 사막 같은 곳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집으로 끌려갔다던 안 할머니는 생전에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일본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칼로 위협했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어.”
당시 할머니의 증언을 모티브로 설치된 추모관 구형 저울 앞에 서면 할머니의 경험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영상이 투사된다.
고 안점순 할머니가 2017년 3월8일 독일 레겐스부르크 비젠트 네팔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가족과 다시 재회할 수 있던 것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나서였다. 극도의 상처와 곤궁함 속에서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등 자신을 감추고 살았던 안 할머니가 세상에 나온 것은 75살이던 2002년이었다. 피해자 지원 단체의 노력 결과, 안 할머니는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추모관에서는 다양한 사진 자료들을 통해 수원지역 평화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안 할머니의 활동 모습과 증언, 생애를 되새겨볼 수 있다. 전시 내용을 보고 추모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안점순 할머니뿐 아니라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기억해야 할 말들이 답장으로 나와 관람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장치도 있다.
400여명에 달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과 나이, 증언 등이 적힌 노란 조각들을 담아낸 김서경 작가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전시실에는 수원 광교새도시 한 공동주택 입주자협의회가 마련해 기증한 ‘작은 소녀상’도 설치됐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사진 수원시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이 18일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둘러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