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44조748억원으로 편성했지만, 주민자치 관련 예산과 <티비에스>(TBS) 출연금 등은 대거 삭감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1일 역대 최대인 44조748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사업의 우선순위, 시민의 관점, 사업의 효과성 등을 고려해 기존 사업 지출 예산을 과감히 구조 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시장의 ‘구조 조정’에 대해 예산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철저한 심사를 예고하고 나서 향후 갈등이 예상된다.
논란은 주민참여·자치 분야와 <티비에스>(TBS)에 집중돼 있다. 그중 지난 9월13일 오 시장이 독립성 훼손 논란에도 불구하고 감사위원장까지 대동해 ‘특정 감사’를 밀어붙인 민관협치 예산이 대표적이다. 당시 오 시장은 예산 삭감을 예고하며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에이티엠(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안에서 올해 민간위탁·보조 방식으로 편성했던 시민단체 관련 예산은 반 토막이 났다. 오 시장이 문제 삼았던 시민단체 관련 예산 요구액 1788억원에서 832억원(47%)을 삭감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자신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시민단체들 관련 사업들만 골라 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 예산안에는 일방적인 인력 감축 계획도 반영돼 있어 해당 기관들은 “서울시에 의한 명백한 강제 해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오 시장은 마을공동체, 청년, 혁신, 사회적 경제, 사회주택 등을 예로 들며 “특정인 중심의 이익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티비에스>에 대해 서울시 출연금을 대폭 깎는 방식으로 예산안을 편성했다. <티비에스>의 381억원 예산 요청에 대해 252억원을 편성했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재정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 언론을 뜻하는 것”이라고만 했다.
시민이나 청년이 직접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시민참여예산, 청년자율예산도 애초 요구한 금액에 비해 대폭 삭감됐다. 수개월 시민들의 숙의토론 기간을 통해 요구된 시민참여예산 700억원 가운데 실제로는 자치구 단위 예산은 45%, 동 단위 예산은 100% 삭감됐다. 청년자율예산도 143억원을 요구한 데 대해 84억원이 반영되는 데 그쳤다.
반면, 안심소득, 서울형 멘토링 사업 등 ‘시혜성 정책’의 예산은 대폭 늘어났다. 시는 저소득층 교육 동영상 제공 사업인 ‘서울런’ 사업에 168억원을 편성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서울시의회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원재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예산 삭감 규모가 최대 70%가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는 오 시장의 정무적 사업 추진을 위해 다른 민간위탁 사업을 구조조정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시민행동 준비위원회는 2일 오전 9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의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 시정 자문기구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도 같은 날 오전 10시 시청 앞에서 청년자율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날 오후 서울시의회 제303회 정례회에서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새로운 지도자의 말 한마디면 기존 정책을 무조건 뒤집을 수 있다는 발상은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경만선 서울시의원은 “<티비에스> 예산 삭감이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오 시장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시민의 방송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날 오후 <티비에스> 프로듀서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예산안 편성에 대해 “전형적인 언론탄압”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삭감액 122억원은 <티비에스>제작비의 97% 차지한다. 방송제작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예산권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이야기이자 전형적인 언론 길들이기의 양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우리는 다짐한다. 그럴듯한 논리로 서울시가 다시금 <티비에스>를 장악하는 시도에 절대 눈감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송법(제4조)은 ‘누구든 방송 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승욱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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