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어 최대한 보존하라는 권고를 받은 2층 벽돌식 한옥 대진정밀 건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
민간건설 시행사가 주요 근현대 건축자산을 보존할 계획을 세우면서, 건물을 남기지 않고 외벽만 떼어내 신축 건물에 붙이기로 해 ‘제대로 된 보존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 서울시와 중구 등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지난 7월부터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이주계획을 수립 중 이다. 이 사업구역 안에는 2015년 서울시가 역사도심기본계획에 따라 외관 보존만이 아니라 구조 보존 필요성까지 인정한 ‘대진정밀’이라는 건물이 있다. 대진정밀은 1947년 이전에 벽돌조적조(벽돌을 쌓아 올리는 건축 양식) 방법으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이다. 대진정밀은 당시에는 이 방식으로 2층 건물을 만드는 게 드물어 희소성이 있고, 원형 보존 상태가 좋아 근대건축자산으로 분류됐다.
한호건설은 대진정밀의 구체적인 보존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대진정밀 건물 외부 벽돌을 신축 건물의 저층부 두개 면에 붙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축 건물 앞에 있는 하랑교남북길(옛길)의 폭을 넓히느라 대진정밀도 도로로 편입돼, 대진정밀 보존 위치도 현재 위치에서 옮겨질 예정이다. 시행사 계획대로라면 대진정밀은 현재 자리에서 철거되고, 외부 벽돌 일부만 새 건축물 외벽 일부에 붙여 남겨지게 된다. 계획 수립 당시 근대건축자산을 조사했던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구조 보존이라고 말하려면 지금 건물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약간 띄워서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어야 한다”며 “일단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 저층 모서리에 외관만 만드는 지금의 방안은 보존이 아니라 재현”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대진정밀 건물 보존계획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2일과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진정밀 원형 보존을 요구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안근철 활동가는 “시행사는 전문가 조언을 받아 보존계획을 수립했다지만 이는 개별 전문가 1명의 의견을 받았을 뿐”이라며 “서울시가 역사도심기본계획을 만들었으니 책임감 있는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방안이 현실적인 타협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충분한 보존대책은 아니고 위치가 바뀐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며 “다만 앞으로 대진정밀 건물 2층에 있던 커피집 등의 모습을 사진 같은 기록물로 남겨서 건물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한다면 차선 정도의 보존계획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한호건설 쪽은 “보존대책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바뀔 가능성도 있다”며 “건물 원형 보존은 어렵겠지만 대진정밀 건물 내외부 모습을 사진을 통해 보존하는 방식 등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한호건설의 대진정밀 보존대책.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