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 학부모, 활동가들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달장애인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저도 29살 난 딸이 자폐가 있어요. 코로나19로 복지관에 격일로 가게 됐죠. 격일이지만,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 중구지회장 이금순씨는 29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시 발달장애 예산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주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 소식을 듣고 남 일 같지 않아 회견에 앞장섰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은 생활 패턴이 깨지면 불안을 느낀다. 복지관을 격일로 가는 걸 적응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며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는 것도 힘들어해, 산책 등 운동도 사람의 눈을 피해 깜깜한 밤 잠깐 나갔다 오는 걸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정부 지원이 없어 특수교육을 주 2회만 받아도 매월 월급의 반 이상이 들었던 1990년대와 비교했다. “지금이 그때만큼 힘들다”고 했다. 최소한 이씨 가족들의 시계는 30년 거꾸로 흐른 셈이다. 이씨는 “당시에는 매년 12월이면 왜 허리를 졸라매도 삶이 바뀌는 게 없는지 많이 아팠다”며 “그 아픔이 지금 다시 재발됐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서울시가 발달장애 지원정책 예산 편성에 소극적이다. 관련 예산을 확대해달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단체는 발달장애인을 낮 시간 동안 돌보는 평생교육센터 등 시설 종사자들의 인건비 자연상승분, 발달장애인 및 중증장애인 고용을 위한 뉴딜일자리 사업 예산 등을 해결 과제로 내걸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근무하는 ㄱ씨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호봉 자연상승분조차 보장되지 않으니 사회복지사들이나 특수교사들은 이 분야에서 일하는 걸 기피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를 이유로 발달장애인에게 제때 배울, 일할 기회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코로나19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체는 지난해 6월 광주시에서 발달장애인 모자가 비극적 선택을 한 이후 올해 3월부터 광역지자체에서 처음으로 전담 부서가 생겼다는 점을 들어 서울시 역시 발달장애정책 관련 전담 부서 신설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더했다. 김수정 대표는 “서울시 내 관련 부서는 업무 과다 때문인지 1년에도 여러번 담당 공무원들이 바뀐다”며 “사람이 바뀌면 처음부터 발달장애인 시설, 지원 서비스, 고용 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로서는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상황에서 서울시 안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8명이 스스로 죽거나 죽임을 당했다”며 “주 돌봄자의 심리적 우울 지수는 비장애인 가족의 4배 이상이라고 한다. 학교와 복지기관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폐쇄·축소 운영됨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고립이 이들을 죽음의 길로 재촉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의 절박한 외침에도 시와 서울시의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샅바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쟁점은 코로나19 예산이다. 이와 관련해 시는 7700억원, 시의회는 최소 1조5천억원을 주장하고 있다. 단체에서 ‘우선’ 요구하는 예산의 규모는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인건비 8억원이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인 박기재 시의원은 “처음 시의회가 제시한 예산안엔 관련 예산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며 “서울시가 관련 예산 편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단체 쪽과 면담 뒤 예산 편성과 관련한 문제점을 단체로부터 직접 전달받아 논의를 한다는 계획이다.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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