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5일 경기 여주시에서 전봇대에 올라 전기 작업을 하던 중 감전사고로 숨진 김아무개씨는 한국전력 여주지사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유가족들은 원청인 한국전력의 책임을 묻고 있다. 사진은 2010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한 노동자가 전봇대에 올라 복구공사중인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꿈속에 나타나 계속 억울하다고, 너무 억울하다며 엉엉 울더라고요. 그 한이라도 풀어주고 싶어요.”
전봇대에 올라 전기 작업을 하던 중 감전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38)씨 유가족은 4일 경기도 한 절에서 49재를 올리다 끝내 오열했다. 이날 김씨 매형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올봄 결혼식을 앞두고 상견례 일정까지 잡고 있었는데…. 자꾸 꿈속에 나타나 억울하다고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품을 확인하는데, 옷가지가 다 타고 거의 재만 남아 있었어요.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켜 놓고 산업재해로 숨지니까 한국전력에서 개인 잘못으로 몰고 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5일 오후 4시께 경기 여주시 현암동의 한 전봇대에서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에 전력 공급 작업을 하던 중 감전 사고를 당했다. 몸 전체 40%에 3도 화상을 입었을 정도로 부상은 심각했고, 같은달 24일 끝내 숨을 거뒀다. 4~5년 전부터 전기 일을 한 그는 지난해 1월 한국전력 여주지사 하청업체에 취업해 근무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그는 정신을 잃고 10m 상공에서 전봇대에 연결된 안전고리에 매달려 있다가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김씨가 맡은 2만2000볼트(V) 특고압 전선 작업은 한전 안전규정상 2인1조가 원칙이지만 사고 당시 현장에는 김씨 혼자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고압 전기 작업에 쓰이는 절연 고소작업차 대신 일반 1t 트럭을 타고 작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절연 고소작업차는 높이 조절이 가능한 바구니 모양의 작업대가 설치되고, 차체에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절연 장비를 갖춘 작업 차량이다. 석원희 전국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개폐기 조작 작업을 할 때는 전선과의 거리를 최소 2미터는 둬야 하는데 그렇게 작업하는지 감독하는 지상 감시자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안전모와 추락 방지용 안전줄을 허리에 착용하고 있었지만, 고무 절연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착용하고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업체는 산재신청서에 ‘신규 송전작업을 하던 중 COS(회로 차단 전환스위치) 퓨즈 충전 부분에 손이 접촉되면서 감전됐다'고 사고 발생 경위를 설명했다.
유족은 김씨가 소유한 자격증으로는 불가능한 전기 작업인데 위법하게 현장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매형 ㄱ씨는 “고인에게 작업 지시를 한 경위를 노동부나 경찰에서 명확하게 밝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사고 현장은 그가 소속된 하청업체의 담당 구역도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한전에 확인한 결과, 사고가 난 전봇대는 다른 업체에서 관리하던 곳이라고 하더라. 현장 소장끼리 얘기해서 홀로 현장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부는 사고 직후인 11월29일부터 12월14일까지 진행한 한전 및 하청업체 재해조사와 산업안전감독에서 두 회사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여러 건 적발하고 과태료 3480만원을 부과했다. 한전이 매년 공시하는 ‘안전경영책임보고서’를 보면 한국전력에서 지난 한 해 발생한 사고사망자는 8명으로, 공공기관 가운데 사고사망자가 가장 많다. 본사 직원은 1명뿐이고 나머지 7명은 모두 ‘발주사’로 분류된 하청 직원이었다. 2016~2020년 사고사망자는 39명인데, 이 역시 본사 직원은 단 한 명뿐이었고 38명 모두가 발주사 직원이었다.
노동부는 지난달 16일 한국전력에 사망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지도했다고도 밝혔다. 경찰도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한국전력 여주지사와 하청업체 관계자 등 2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이정하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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