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임진강 망제여울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200여마리가 먹이를 먹거나 쉬고 있다.
2021~2022년 겨울, 경기도 파주·연천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찾은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개체 수가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논습지 매립과 각종 개발 등으로 서식지 질이 악화해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주환경운동연합,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철원 두루미운영협의체 등 지역 단체들과 이수동 경상국립대 교수(조경학과)팀이 합동 조사한 결과, 지난 12월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류는 △파주 두루미 62마리와 재두루미 681마리(도라전망대에서 관측한 서부 디엠제트와 북한 쪽 두루미 20마리, 재두루미 368마리 포함) △연천 두루미 383마리, 재두루미 865마리 △철원 두루미 1200마리, 재두루미 5300여마리로 집계됐다. 이는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 몽골초원 지역에서 살다 겨울에 남하하는 두루미의 약 90%, 재두루미의 80% 안팎에 해당한다. 2020~2021년 겨울 이 지역에서는 △파주 두루미 46마리, 재두루미 474마리(디엠제트 불포함) △연천 두루미 466마리, 재두루미 707마리 △철원 두루미 1082마리, 재두루미 5771마리가 관찰됐다.
또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이번에는 2주가량 늦게 한반도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적인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천연기념물 202·203호인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매년 10월 말께 날아와 3월 중순까지 한반도에 머문다.
지난달 말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임진강 망제여울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쉬고 있다.
“국제두루미재단 창시자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루미 서식지로 손꼽은 임진강 망제여울마저 교란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민통선이 해제되면 망제여울 쪽 교란이 더욱 심각해질 텐데, 하루빨리 이 일대를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이사가 연천군 중면 횡산리 임진강 필승교 아래 자리한 망제여울을 내려다보며 이같이 말했다. 민통선 지역인 망제여울에는 이날 두루미와 재두루미 200여마리가 먹이를 먹거나 쉬고 있었다.
연천 지역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이 잠자리로 가장 많이 찾는 임진강 망제여울에서 150m 떨어진 도로변 언덕에는 지난해 10월께 횡산리 주민들이 만든 탐조용 비닐하우스가 들어섰다. 이날도 두루미를 촬영하려는 사진가들로 망제여울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종일 북적대고 있었다. 주민들이 안내한 사진가, 탐조객 차량 서너대가 비좁은 도로를 오가거나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었고, 두루미들은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통화음과 카메라 셔터 소리 등 소음에 움찔대거나 고개를 들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김 이사는 “탐조용 하우스가 서식지와 너무 가까워 교란이 심각한 상태다. 철거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더욱이 이 지역은 머지않아 민통선에서 해제될 전망이다. 지난달 연천군과 육군 28보병사단은 2024년까지 연천군 민통선 지역 237㎢ 가운데 망제여울을 포함한 26㎢를 해제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연천군은 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해 임진강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2020년 정부에 요청했지만, 2년째 현장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해 6월 왕징면 강내리 군남댐 홍수조절지에 남북 공동경작지로 조성된 ‘평화농장’과 주변 완충 습지에 두루미 10여마리와 재두루미 30마리가량이 다시 찾아왔다. 경기도와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전체 21만3448㎡ 규모의 평화농장 가운데 지난해 9만4623㎡에서 첫 친환경 벼농사를 지었으며, 주변에 3만1902㎡ 넓이 완충 습지를 조성한 바 있다(<한겨레> 2021년 6월11일치).
이수동 교수는 “평화농장 주변은 벼 낙곡과 율무, 저서생물 등 먹이가 풍부해 교란만 없으면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논을 조성해 안전한 잠자리를 만들어주면 개체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경기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의 한 논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가족이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 한반도 디엠제트 일원이 유일하다.
지난해 논습지 불법 매립과 성토가 기승을 부렸던 파주 민통선 지역은 두루미류 서식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매립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전진교 인근 동파리와 하포리, 정자리 등 농경지에서는 수년째 서너마리씩 무리 지어 찾던 재두루미 가족들이 자취를 감췄다. 또 비닐하우스와 인삼밭, 과수원 등 시설 경작지 증가가 두드러진 백연리, 점원리 들판에서도 재두루미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디엠제트 안 대성동마을과 도라산전망대 북쪽 개성공단 앞 논에서 두루미 개체 수가 많이 관측됐다.
파주 민통선에서 매주 두루미들을 모니터링하는 ‘에코휴 디엠지’ 전선희 대표는 “성토가 진행된 하포리의 재두루미 서너 가족이 떠났고, 점원리에서도 수년째 세 가족이 월동했는데, 지금은 한 가족만 남아 있다”며 “전체적으로 파주 지역 재두루미 개체 수는 크게 늘었지만, 개체 수가 늘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훌라호보호구역에서 서식하던 검은목두루미 약 500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고 한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중순께 경기 연천군 장남면 임진강에서 재두루미 가족과 고라니 한마리가 우연히 마주쳤다.
전체 두루미류의 80%가량이 찾는 철원에서도 개체 수가 증가세를 유지했다. 특히 새해 볏짚 존치 사업비(생태계 서비스 지불제)가 기존 1억2천만원에서 3억3천만원으로 증액돼, 두루미들이 안정적으로 먹이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최종수 철원두루미운영협의체 부회장은 “볏짚 존치 사업비 증액으로 철원 농민들이 마음 편하게 농사지으며 두루미를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인위적인 먹이주기는 에이아이(AI) 등 감염병에 취약할 수 있으므로 농경지에서 두루미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연천·철원/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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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이 무너지면, 한반도 두루미도 멸종 위기”
실태조사한 이수동 교수
“천연기념물 보호구역 지정 등 국가 차원 공존 대책 세워야”
“마지노선인 철원이 무너지면 두루미는 더 이상 한반도 남쪽을 찾지 않게 될 것이고, 결국 멸종 상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2009년부터 디엠제트(DMZ·비무장지대) 일원 두루미류 서식 실태를 조사해온 이수동 경상국립대 교수(조경학과·사진)는 “접경 지역 두루미류 증가세는 중국 쪽 서식처가 훼손된 탓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훼손이 안 일어난다고 말하기 어렵다. 낙동강, 서해안, (경북 구미) 해평 습지 등 대부분이 비닐하우스로 덮여 대체 서식지로 갈 만한 곳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두루미류가 디엠제트로 몰리면 행정하는 쪽에서 먹이주기나 관리가 편하겠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에 취약하고 집단서식지에서 교란이 발생하면 우리나라를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두루미류는 서식처가 훼손되면 일단 (주변) 다른 곳으로 옮겨 이용하지만 마지막까지 몰리면 아예 떠나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한때 재두루미 도래지였지만 현재는 이동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한강 하구와 비닐하우스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어느덧 개체 수가 10분의 1로 줄어든 철원 양지리 등이 그 사례다.
이 교수는 “중국과 북한 쪽이 훼손된 상태에서 철원마저 무너지면 재두루미는 일본 이즈미로 더 내려갈 수 있겠지만, 디엠제트가 월동 한계선인 두루미는 멸종할 수 있다. 재두루미도 기후변화로 더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 개체 수가 확 줄어들 수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습지보호지역이나 천연기념물 보호구역 등으로 지정해 농민과 공존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은 전세계 두루미 개체 수를 2800~3430마리(홋카이도 포함), 재두루미는 6700~7700마리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텃새화된 홋카이도 개체 수를 제외한, 이동하는 두루미는 약 1800마리로 추정된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