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수도권

“노숙인 대소변 보면 신고하라” 서울역 경고문, 혐오·낙인인 이유

등록 2022-01-19 09:14수정 2022-01-19 10:32

냄새 민원에 역사관리 교통공사 경고문 붙였다가 떼내
시민단체 인권위 진정제기…팬데믹 이후 화장실 비개방 어려움도

지난 12일 오전 지하철 서울역 2번 출구 계단 인근 벽면에 서울역이 부착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지난 12일 오전 지하철 서울역 2번 출구 계단 인근 벽면에 서울역이 부착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경고> 엘리베이터 내/외부 대소변 금지. 엘리베이터에서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 CCTV 확인 후 고발 조치 예정.”

지난해 말부터 서울지하철 서울역 2번출구 엘리베이터 안팎에 붙은 경고문 내용이다. 경고문을 내건 주체는 역사를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통로를 오가는 시민들로부터 대·소변 냄새 관련 민원이 하루에도 5∼10건 들어왔다고 한다. 공사 쪽은 “(민원이 접수돼) 서울역 엘리베이터 인근에서 볼일을 본 분들을 CCTV로 확인해보면 노숙인일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뗐다”고 전했다.

경고문을 마주한 노숙인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18일 오전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들과 함께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강화하는 동시에,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모욕감과 낙인감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홈리스행동은 “최근에는 한 거리 노숙인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얼굴을 짓밟혀 얼굴에 멍이 드는 사건이 있었다”며 “노숙인 혐오를 부추기고 조롱하는 유튜버들도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해당 내용이 “노숙인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홈리스행동이 마련한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인 혐오 조장 행태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차별과 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홈리스행동이 마련한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인 혐오 조장 행태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차별과 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홈리스행동은 단순히 ‘혐오 조장 표현’에 문제삼는 것을 넘어, 코로나19 여파로 노숙인들의 심야 화장실 이용이 얼마나 어려워졌지도 설명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서울역 광장 인근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심야에 서울역파출소, 서울역희망지원센터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으나, 코로나19 이후엔 방역상 이유로 시설 이용이 어려워졌다”며 “엘리베이터 인근이 그나마 숨어서 볼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역 광장 건너편엔 심야에도 이용할 수 있는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지만, 거리가 꽤 멀어 급할 때 사용이 어렵고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60대 여성 노숙인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공원 화장실은 매일 관리되지만, 우리가 쓰는 곳은 다르다. 남녀 공용인데 문고리가 오래전부터 고장 나 잠글 수도 없고, 손을 씻을 곳도 없어 낮에 컵에 물을 받아 놨다가 새벽에 씻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 인근 마트 주차장에 화장실이 하나 있어 새벽에 열심히 뛰어가곤 하는데, 무섭기도 하고 공공시설이 아니라 이용에 눈치도 보인다”고 전했다.

홈리스행동이 마련한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인 혐오 조장 행태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차별과 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nbsp;
홈리스행동이 마련한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인 혐오 조장 행태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차별과 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홈리스행동과 노숙인들은 “서울역 광장에 심야에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방치되다시피 한 서울역 광장 맞은편의 간이화장실조차 2017년 주변 반발 속에 어렵사리 겨우 들어섰다. 안 활동가는 “서울역 광장은 국토교통부, 지하도는 서울교통공사, 인근 시장은 중구청 관할이라 누구도 화장실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서울시 노숙인정책 진단과 발전방안’ 보고서에서는 서울시 노숙인 수(2020년 기준)가 3895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