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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집에 7명이 북적북적...우크라 고려인들 힘겨운 한국살이

등록 2022-04-13 04:59수정 2022-04-13 19:08

전쟁 피해 한국행 400여명 추산
가족·지인 도움으로 입국했지만
거처 구하기·비자 받기 쉽지 않아
시민단체 “정부·지자체 지원 절실”
김올렉산드르씨가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빌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지난달 31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그의 지인인 남세르게이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방 2개짜리 33㎡(10평) 크기의 집에는 김씨 가족과 남씨 가족 7명이 살고 있다. 김올렉산드르씨 제공
김올렉산드르씨가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빌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지난달 31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그의 지인인 남세르게이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방 2개짜리 33㎡(10평) 크기의 집에는 김씨 가족과 남씨 가족 7명이 살고 있다. 김올렉산드르씨 제공

“우크라이나에서는 방 3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여유로운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전쟁이 난 뒤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 8일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빌라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고려인(일제강점기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한민족 후예) 김올렉산드르(37)씨의 말이다. 김씨 가족이 머무는 방 2개짜리 33㎡(10평) 남짓한 집에는 현재 7명이 살고 있다. 방 하나에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살다가 전쟁이 나자 아내, 두 딸과 함께 탈출해 지난달 31일 한국에 입국한 김씨 가족이, 다른 방에는 집주인인 남세르게이(35)씨의 어머니, 동생이 머물고 있다.

살림살이와 우크라이나에서 챙겨온 여행가방으로 가득 찬 방은 네식구가 편히 눕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김씨는 “우린 그나마 피난처를 수월하게 찾은 편”이라며 “자가격리하는 1주일 동안 큰딸이 열이 나는데 분리할 공간이 없어 코로나19 확진이면 어떡할까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자가검사키트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했다.

러시아군 폭격을 피해 오데사에서 탈출한 김씨 가족은 루마니아에서 남세르게이씨 가족을 만나 함께 입국했고, 7년 전부터 한국에서 살아온 남씨의 배려로 이 집에서 머물게 됐다.

김씨 가족은 전쟁 공포로부터는 한숨 돌렸지만, 태어난 지 석달 된 딸이 새벽에 울기라도 하면 옆방 남씨 가족이 깰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화장실을 7명이 나눠 쓰는 것도 고역이다. 남씨 가족을 위해서라도 가족이 살 만한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김씨는 취업이 불가능한 90일 방문비자를 발급받은 상태다. 방문취업비자나 재외동포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출입국사무소와 논의 중이다.

2019년 한국에 입국해 평택에 사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엄올렉산드르(24)씨는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를 탈출한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 동생을 직접 데려오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엄씨와 가족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퇴직금은 엄씨와 가족의 항공권 구입 등에 대부분 썼다. 엄씨는 “전쟁 통에 일단 가족을 데려오긴 했는데, 모아놓은 얼마 안 되는 돈과 퇴직금까지 써버렸다. 게다가 당장 취직이 안 돼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엄씨는 “다섯 가족이 원룸에서 한달 정도 살다가 평택포승고려인마을 도움을 받아 방이 2개 있는 집으로 이사해 운이 좋다”고 했다.

지난 4일 외교부가 한국에 연고가 있는 우크라이나 고려인에게는 여권이 없어도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기 시작하면서, 엄씨와 남씨, 김씨 가족처럼 한국을 찾은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 고려인협회와 시민단체 ‘고려인너머’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루마니아, 폴란드 등으로 탈출한 뒤 한국행을 선택한 고려인들을 약 4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150명가량이 시민단체 쪽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김올렉산드르씨가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빌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지난달 31일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그의 지인인 남세르게이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방 2개짜리 33㎡(10평) 크기의 집에는 김씨 가족과 남씨 가족 7명이 살고 있다. 김올렉산드르씨 제공
김올렉산드르씨가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빌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지난달 31일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그의 지인인 남세르게이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방 2개짜리 33㎡(10평) 크기의 집에는 김씨 가족과 남씨 가족 7명이 살고 있다. 김올렉산드르씨 제공

김영숙 고려인너머 사무총장은 “전쟁을 피해 탈출한 이들 중 상당수는 김올렉산드르씨처럼 거주지가 불안정하고 비자 문제로 직장을 구할 수도 없어, 가족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는 숙박업소를 전전하고 있어 당국의 조처가 절실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노인과 어린아이가 받는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며 “시민단체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에게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정부가 이들의 진학, 의료, 비자 발급 등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이들의 거주지 또는 생활비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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