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에게 집요하게 전화해도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19·여)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ㄱ양은 지난 1월8일부터 11일까지 헤어진 남자친구 ㄴ(38)씨에게 51차례 전화를 건 혐의를 받고 있다. ㄱ씨는 1월10일에 새벽 1시23분부터 저녁 6시43분까지 39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 ㄴ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ㄱ씨는 1월17일 오후 6시와 3월15일 저녁 6시30분 ㄴ씨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현 판사는 “스토킹법의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음향을 도달하게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반복적으로 음향을 보냄(송신)으로써 이를 받는(수신)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케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전화기의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므로 법 위반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현 판사는 ㄱ씨가 ㄴ씨 집에 두차례 찾아간 것과 관련해서도 반복적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주거지를 2회 찾아간 행위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약 두 달 간격으로 피해자 주거지를 찾아간 것을 일련의 반복적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앞서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가 지난 6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ㄷ(54)씨에게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을 때와 같은 논리다. ㄷ씨는 지난 4월9일 법원으로부터 전 연인 ㄹ(40대 여성)씨 집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통화·문자 송신 금지 등을 명령받고도 다음날인 지난 4월10일부터 6월3일까지 반복해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현 판사와 정 판사는 17년 전인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지만, 당시는 스토킹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에 따라 판결하던 시기였다. 정 판사의 무죄 판결과 관련해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명을 내고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만 해석해 피해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며 유감을 밝혔다. 검찰도 설명자료까지 내고 “법원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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