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상가 건물에서 열린 서울시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부 회의 현장. 양쪽 분쟁 당사자들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김선식 기자
지난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상가 건물 7층. 검정 외투를 입은 두 남성이 말없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에선 3명이 나란히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울시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서울 상가분쟁조정위’) 조정위원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조정위원장)와 이정화 공인중개사, 박진홍 변호사다. 현재 조정위에는 교수·변호사 등 위원 27명이 활동 중이다. 조정위는 2016년 5월 처음 구성됐다. 이날은 올해 64번째 현장 조정일이었다.
“두분 모두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지만 여기선 문제 해결 방법만 생각해야 합니다. 진행 중에 서로를 향해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할 말이 있으면 조정위원에게만 하세요. 그러면 조금 감정이 가라앉고 더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긴 침묵을 깨고 조주현 위원장이 운을 뗐다.
임차인 ㄴ씨는 2014년 11월부터 서울 성동구에 있는 상가 건물을 빌려 학원을 운영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강생이 줄면서 매달 117만원씩 내던 임대료가 지난해부터 밀렸다. 임대인 ㄱ씨는 지난 10월 이를 이유로 계약 해지와 건물 명도를 요청하는 분쟁조정 신청을 냈다.
ㄱ씨는 “임대료를 못 내면 무슨 사정인지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전화해도 말도 없고 심지어 문자로 욕까지 해서 기분이 많이 상했다. 빨리 상가를 비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ㄴ씨는 “코로나19가 너무 오래가서 학원 운영이 어려웠다. 그래도 임대료 연체는 내 잘못이 맞다. 나가기 전에 보증금부터 달라”고 했다.
양쪽은 임대차 계약을 끝낸다는 입장은 같았다. 다만 각자 건물 명도와 보증금 반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조 위원장은 “임차인은 건물 원상회복 의무를 이행하고 임대인은 연체 임대료를 뺀 보증금을 돌려주면 된다. 그 내용을 합의문에 정리하고 서명하면 법원 판결과 같은 집행 효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합의문에 서명한 임대인과 임차인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퇴장했다. 조정위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화 중개사는 “연체분 총액에 이견이 없어 쉽게 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런 일로 법정에 가면 변호사비, 시간, 스트레스 등 비용이 훨씬 크다. 두 사람 입장에선 가장 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했다. 조정위 분쟁 조정 신청은 무료다.
서울 상가분쟁조정위는 2016년부터 2022년 11월 말까지 모두 1006건의 조정 신청을 접수해 504건의 조정을 완료했다. 올해는 11월30일까지 174건을 접수했다. 분쟁 유형별로 보면, 수리비(49건), 계약 해지(45건), 임대료 조정(45건) 순으로 많았다. 반면 2019년까지 매년 1·2위를 오가던 권리금 분쟁은 크게 줄었다. 이정화 중개사는 “코로나19 이후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권리금 분쟁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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