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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돼지 똥오줌 방에서 10년…이주노동자 숨져간 이곳

등록 2023-03-08 08:00수정 2023-03-08 17:45

돼지 농장에서 일한 67살 이주노동자 사망
60대 타이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7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이 복합가스농도측정기를 이용해 공기 중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측정하는 등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녹색 포장 아래에는 돼지 사체가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문이 숨진 쁘라와 세닝문추가 머물던 방이고 왼쪽이 돼지우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60대 타이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7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이 복합가스농도측정기를 이용해 공기 중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측정하는 등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녹색 포장 아래에는 돼지 사체가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문이 숨진 쁘라와 세닝문추가 머물던 방이고 왼쪽이 돼지우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7일 오후 경기 포천시 영북면의 한 돼지농장을 찾았다. 농장 초입에 이르자 축사에서 풍겨오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준비해 간 케이에프(KF)94 마스크를 써봤지만, 악취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방역복을 입고 길이 30m, 너비 10m의 돼지 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낯선 이의 출현에 놀란 돼지 100여마리가 일제히 울어댔다.

이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타이(태국)인 이주노동자 쁘라와 세닝문추(67)는 지난 4일 오후 5시쯤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쁘라와는 이날 오후 2시 실종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쁘라와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던 경찰은 하루 뒤인 5일 60대 돼지농장 주인 김아무개씨를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비닐에 둘둘 싸인 돼지 사체 옆에서 살게 했다

경찰은 인근 폐회로티브이(CCTV) 녹화 영상을 분석한 결과, 쁘라와가 주검으로 발견되기 이틀 전 김씨가 쁘라와의 생활공간이 있는 축사에서 인근 야산으로 트랙터를 몰고 간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김씨가 축사 안에 쓰러져 있던 쁘라와를 트랙터에 실어 유기 장소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쁘라와가 생활하던 공간은 축사 건물 안에 있었다. 돼지 사육장과 쁘라와의 생활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얇은 시멘트벽이 유일했다. 벽면 아래로 돼지 분뇨가 흘러든 흔적이 보였다. 축사 곳곳에 돼지 사체가 비닐 천막에 덮여 있었다. 쁘라와가 축사 일로 지친 몸을 눕히던 침실은 성인 남자 2명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였다.

비닐장판이 깔린 바닥에는 옷가지와 이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구석에선 밥상으로 쓴 듯한 원형 소반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모니터 1개가 눈에 띄었다. 벽지는 습기 탓인지 곰팡이가 피고 여기저기가 들떠 있었다. 전날 이곳을 찾았던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는 “처음 왔을 때 방과 부엌 모두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고 귀띔했다.

60대 타이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7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이 복합가스농도측정기를 이용해 공기 중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측정하는 등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60대 타이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7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이 복합가스농도측정기를 이용해 공기 중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측정하는 등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쁘라와는 악취와 쓰레기, 돼지 울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서 10년 남짓한 기간을 보냈다. 2013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이곳 포천 돼지농장에서 줄곧 일했다. 주검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타살 정황이 없다”는 1차 구두소견을 내놓았다. 노동당국은 쁘라와의 열악한 근로·거주 환경이 죽음과 연관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일환경건강센터의 류현철 센터장은 “쁘라와가 축사 건물 안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로 미뤄 분뇨에서 발생한 황화수소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황화수소는 정화조 청소 중 질식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장기간 노출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쪽은 쁘라와의 사인을 과로사로 의심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쁘라와의 사인은 심장계통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과로사의 전형적 형태다. 농장주와 단둘이서 100마리가 넘는 돼지를 사육하는 일이 버거웠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쁘라와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경찰은 농장주 김씨가 불법 체류자 고용 사실을 감추기 위해 쁘라와의 주검을 야산에 유기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7일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된 농장주 김씨에 대해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포천/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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