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0시 인천 부평구 캠프마켓 B구역에 있는 조병창 병원 건물. 건물 주위로 철거를 위한 비계가 설치돼있다. 이승욱기자
8일 오후 인천 부평구에 있는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B구역 내 한 건물 주변에서 작업자들이 비계 설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건물 주변을 둘러쌀 가림막을 옮기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성된 조병창에 딸린 옛 병원이다. 이곳에서 만난 소병순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어제부터 병원 건물 주위로 비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체 작업이 중단됐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모양”이라며 “가림막과 비계를 옮기기 위해 트럭이 2대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했다.
부평 조병창에는 과거 1만2000명의 조선인이 강제 징용됐다. 그중에는 미성년자도 많았다고 한다. 열악한 작업환경 탓에 다치는 노동자도 적지 않았다. 이에 일본은 조병창 주물공장 근처에 400병동의 병원을 지었다.
국방부는 지난달 말 부평구에 조병창 병원 철거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평구의 철거 허가가 이뤄지면 국방부는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 논란은 병원건물이 있는 캠프마켓 B구역의 토양오염 정화작업과 연관돼있다. 국방부와 인천시는 토양오염 정화를 위해서는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의견은 달랐다. 문화재청은 ‘캠프마켓 1780번(조병창 병원건물) 건물보존을 위한 기술적 방안 검토’ 검토의견서에서 “1780건물의 원위치보존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판단돼 해체하지 않고 건물기초를 보강한 뒤 토양오염 정화작업을 하는 방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정화작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인천시 군부대이전개발과 쪽은 “조병창 병원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정화하게 되면 법정 정화기한을 초과하게 된다. 조병창 병원 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 정화 기간은 2년이고 1년 이내로 두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병창 병원건물이 있는 캠프마켓 B구역의 정화 기간은 최근에 두 번째 연장해 법적인 정화기한은 올해 12월이다.
다만 캠프마켓 B구역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진행하면 법적 정화기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위해성 평가는 일정 토양오염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 이하로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환경부 토양지하수과는 “위해성 평가 대상으로 지정되면 별도 저감 및 관리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관리가 이뤄진다”며 “토양오염 정화 기간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지역 역사학계는 국방부와 인천시 등에 캠프마켓 B구역 위해성 평가 신청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인천시는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시 군부대이전개발과 쪽은 “조병창 병원건물도 위해성 평가를 받게 해달라며 환경부에 신청할 수 있었다. 다만 위해성 평가는 일정 수준 이하로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인천시의 원칙은 국방부가 해당 땅을 정화하고, 정화된 땅을 반환받는 것이기 때문에 위해성 평가 대상으로 선정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8일 낮 12시 인천시청 정문 계단에서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가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승욱기자
조병창 병원건물을 철거하지 않는 방법이 있음에도 철거작업이 진행된 것에 지역 역사학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는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조병창 병원건물은 일제 강점기, 해방 후 건국 시기,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가 집약된 공간이지만 유정복 인천시장은 국방부에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를 요청했다”며 “일제 침략전쟁과 강제동원 역사 없애기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국방부 쪽은 <한겨레>에 “건축물 하부지역의 토양 오염 상황을 확인하면서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며, 오염되지 않은 지역의 건축물은 존치될 수 있도록 정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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