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앞 경복궁 돌담길에서 관광객들이 궁 인근을 산책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광화문 빌딩들이 뿌옇게 보인다. 서울시는 3월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이정규 기자
기후위기로 남한 서쪽 지역 풍속이 50년간 감소하면서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갈수록 악화될 수 있다는 연구 분석이 나왔다. 풍속이 계속 줄면 올해 3월 초 일주일간 고농도 미세먼지가 지속됐던 것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12일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지구환경공학부) 연구팀 분석을 보면, 1958년부터 2018년까지 60년간 2월과 5월 사이 남한 서쪽 지면 부근 ‘풍속 추세선’은 1.5㎧에서 1.25㎧로 0.25㎧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풍속 추세선은 풍속의 장기간 추이를 분석하기 위해 매해 풍속 변화를 직선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한해 평균 풍속이 1㎧를 넘지 않는 사례는 1995년까지는 발견되지 않다가 1996년 이후 6번으로 급격히 늘었다. 서울의 풍속도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2.57㎧였지만, 지난해에는 1.7㎧로 뚝 떨어졌다. 올해 10월까지 서울 평균 풍속은 1.92㎧다. 윤 교수 연구팀은 ‘기후위기로 인한 남한 서쪽 지역 풍속 감소’가 ‘미세먼지 고농도 사례 발생’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최근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감소하는데도 미세먼지 나쁨 일수가 늘고 있는 이유를 연구팀은 풍속 감소 때문으로 보고 있다. 윤 교수는 “미세먼지 고농도 사례는 배출량과도 관련이 깊지만 평균 풍속도 주요한 원인”이라며 “평균 풍속이 줄면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빠져나가지 못해 미세먼지 고농도 사례가 발생하는 확률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 서쪽 지역 풍속이 60년 동안 꾸준히 감소된 경향이 기록된 그래프. 윤진호 교수 제공
실제 에어코리아가 관측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겨울 동안의 서울지역 미세먼지(PM-10) 추이를 보면, 평균 농도는 67㎍/㎥에서 2017년 54㎍/㎥로 줄어든 반면,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일수는 2016년 9회에서 올해는 23회로 2.55배가량 늘었다. 고농도 미세먼지 ‘나쁨’은 미세먼지(PM-10) 81㎍/㎥ 이상, 초미세먼지(PM-2.5) 36㎍/㎥ 이상일 때 발령된다.
또한 지난 3월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 이례적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때도 서울시의 풍속이 한동안 급감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3월1일 2.1㎧였던 풍속은 이튿날 1.1㎧로 뚝 떨어졌다가 조금씩 올랐고 초미세먼지(PM-2.5)도 3월1일 84㎍/㎥에서 3월5일 135㎍/㎥로 정점을 찍었다가 내려갔다.
윤 교수는 “기후변화로 풍속이 줄어 늦겨울부터 이른 봄에 기승을 부리는 한반도 전역의 미세먼지가 일본으로 더디게 빠져나갈 확률이 생긴다”며 “앞으로 한반도 서쪽 부근에서 올해 3월처럼 갑자기 바람이 뚝 떨어지는 사례들이 늘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서쪽 해안, 유럽 지중해 인근, 미국 동서해안을 중심으로 대기가 안정화돼가고 있는 모습. 대기 안정화는 풍속을 줄이고 미세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윤진호 교수 제공
연구팀은 풍속이 느려지는 이유로 지구온난화를 들었다. 지구온난화로 남한 서쪽 지역 지상에서 약 2㎞ 떨어진 대기 하층이 점점 ‘안정화’돼 대기의 상하 순환을 약화해 바람이 천천히 불게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한반도 서쪽 해안뿐만 아니라 유럽 지중해, 미국의 동서해안 인근 대기도 안정화되고 있다고 한다. 윤 교수는 “특히 한반도는 미세먼지 최대 배출국인 중국과 붙어있는데 풍속이 장기간 감소한다는 점이 큰 문제”라며 “미세먼지 문제는 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풍속 감소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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