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선서문과 폭탄 등을 들고 촬영한 사진. 윤봉길의사기념관 제공
충남 예산군 윤봉길의사기념관(www.yesan.go.kr/ybgm.do)은 19일 윤봉길 의사(1908년6월21일~1932년12월19일) 순국 90주기를 맞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특별기획전을 시작했다. 새해 3월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보물(568-3호)인 윤 의사의 친필 편지 원본과 의거 당일인 1932년 4월29일 아침에 김구 선생과 맞바꾼 회중시계, 피 묻은 손수건, 도장, 돈, 동전 등 유품이 공개됐다.
전시장은 1932년 4월26일부터 의거 전날인 4월28일까지 윤 의사의 하루하루를 소개하는 3개의 방으로 꾸려졌다. 26일 방은 윤 의사가 안공근(안중근의 동생) 선생의 집에서 쓴 한인애국단 선서문이 걸렸다. “나는 적성으로써(진심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애국단은 이날 만장일치로 윤 의사의 거사를 가결한다. 이 방의 한쪽 벽은 태극기와 의자에 앉아 있는 김구 선생 사진 틀이 놓여 있어 관람객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의거 사흘 전 윤봉길 의사의 행적이 전시된 1932년 4월 26일 방, 관람객들이 김구 선생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제공
의거 이틀 전인 27일, 윤 의사는 훙커우 공원을 답사하고 한인애국단 입단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선서문을 달고 한 손에 폭탄, 다른 손에 권총을 든 윤 의사 사진이 바로 이날 촬영한 사진 3장 가운데 한장이다. 윤 의사는 당당하고 의연하다. 윤 의사는 28일 공원을 다시 둘러본 뒤 이력서를 쓰고 도시락 폭탄과 수통 폭탄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의거 당일인 29일 아침식사를 함께 한 김구 선생과 회중시계를 바꾼다. 기념관은 폭탄 구조도를 소개하고 관람객이 던져 볼 수 있는 모형 폭탄도 비치했다.
29일 윤 의사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으로 가 일왕 생일 겸 중일전쟁 승리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파견군사령관, 가와바다 사다쓰구 상하이 거류민단장을 죽이고 일본 수뇌부 7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체포된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일본으로 호송돼 12월19일 순국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19일 문을 연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특별기획전시장 입구. 윤봉길의사기념관 제공
윤영미 윤봉길의사기념관 학예사는 “윤 의사의 의거는 이봉창 의사 의거와 함께 침체한 임시정부에 활력이 됐고 중화민국이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돼 독립 투쟁의 흐름을 바꿨다”며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윤 의사가 돼 보는 체험형 전시인 만큼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길을 걸었던 청년 윤봉길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되새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케이팝고교 교사와 학생 등으로 꾸려진 충남도 일본방문단(단장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은 이날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의 윤봉길 의사 순국 현장을 찾아 참배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