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호붐이’는 2007년 6월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사육사가 주는 우유를 먹고 자란 아빠 ‘박남이’와 달리 호붐이는 엄마 젖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호붐이는 다른 동물원 호랑이보다 사람을 더 경계했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수의사는 “야생성이 더 있는 친구였다”고 호붐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19일 호붐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일주일 전부터 뒷다리가 마비돼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척추 디스크가 의심되는 상황. 계속 움직이지 못하면 욕창이 생기고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었다. 청주동물원은 안락사 대신 수술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김 수의사는 “호랑이는 마취도 어렵고 뼈도 크고 단단해 수술이 쉽지 않다. 국내에서 호랑이 디스크 수술 사례도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 보통 안락사를 시키지만, 그대로 호붐이를 보낼 순 없었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수술은 충북대 동물병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마취한 상태로 엠알아이(MRI)를 찍어보니 척추 디스크가 맞았다. 그러나 호붐이는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긴 마취를 이겨내기에 호붐이는 너무 노쇠했다. 호랑이의 평균 수명은 10∼13년이고, 동물원 호랑이의 경우 15년에서 길면 20년을 산다.
관람객들에겐 무뚝뚝하던 호붐이도 같은 사육사에서 지내던 여동생 ‘호순이’와는 사이가 좋았다. 동물원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3년 전 호붐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호붐이가 떠난 뒤로도 호순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리 짓지 않고 단독 생활하는 호랑이의 본래 특성”이라고 김 수의사는 설명했다.
청주동물원은 호붐이가 떠난 사실을 차마 바로 알리지 못했다. 슬픔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동물원 구성원들에게 새끼 때부터 살을 비비며 키운 ‘호붐이’는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중성화 수술을 할 때 호붐이의 정자를 채취해 전북대 수의과대학에 보관 중이다. 호붐이는 갔지만 호붐이의 흔적은 남아 있는 셈이다.
김 수의사는 “우리는 17년 동안 호붐이의 양육자며 보호자였다. 우리에게 호붐이의 죽음은 ‘호랑이 한 마리가 죽었다’ 정도일 수 없다. 호붐이가 많이 그립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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