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단체가 성평등·인권 문제를 다룬 어린이도서를 폐기하라고 요구해 물의를 일으키는 가운데 김태흠 충남지사가 일부 도서의 열람을 제한했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충남의 한 단체가 공공도서관에 성평등·인권 문제를 다룬 어린이도서를 폐기해 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김태흠 충남지사가 일부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26일 충남지역 공공도서관 등의 말을 종합하면, 충남 홍성에 있는 꿈키움성장연구소는 지난 5월 중순 충남권 공공도서관에 공문을 내어 ‘다양성, 사회문화적 성, 성인지 등을 근거로 동성애, 낙태, 조기성애화 등을 다룬 도서들이 도서관에 비치돼 있다. 이를 폐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단체가 첨부한 폐기 도서목록은 120종이었으나 최근에는 153권으로 늘었으며 ‘자살’ 관련 책들도 포함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도서목록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도서관 관계자는 “폐기 목록 도서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만든 그림책 등 여성가족부가 2019~2020년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지정한 23권도 포함됐다. 이 책들은 어린이에게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알리는 구실을 하는 책들”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성평등·인권 관련 어린이도서에 대한 검열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5일 충남도의회 본회의에서 김태흠 충남지사는 지민규(아산6·국민의힘) 도의원이 “학교 및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수백권의 성교육 도서에 성행위 방법·성적 표현이 적혀 있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성적 자극이 우려되니 조처해 달라”고 요구하자 “2020년 여성가족부가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지정했다가 철회한 7종 도서에 대해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대답했다.
충남도서관 쪽은 “‘걸스토크’ 등 7종 10권에 대해 열람을 제한한 것은 사실이다. 열람을 제한한 시점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충남교육청은 “꿈키움성장연구소가 밝힌 책들은 대부분 성평등·위안부 문제 등을 다룬 것이다. 일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책을 들여다보는 단계”라고 했다.
이에 대해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명을 내어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포괄적 성교육을 받을 권리를 막는 것은 국제인권조약 위반”이라며 김태흠 지사의 성평등 도서 열람 제한 발언을 규탄했다. 이어 “김태흠 지사와 일부 지방의원들의 시대착오적인 성 관념과 차별적 인식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충남의 한 도서관 사서는 “공공도서관은 의미와 역할이 있다. 단체는 그렇다 쳐도 정치권이 열람 제한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거에는 5·18, 현대정치 인물사, 일제강점기를 다룬 책들이 논란을 겪은 것처럼 지금은 성교육·성평등이 논란이 되는 과정일 뿐이다. 사서의 구실을 다해 도서관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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