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한 회원이 지난 24일 대전엠비시(MBC) 앞에서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동대책위 제공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을 위주로 운영하며 여성 아나운서만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고용해온 지역 방송사의 행태가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지난달 27일 인권위 차별시정소위원회는 <대전 MBC>(엠비시)에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을 시정하라’는 취지의 인용 결정을 했다. 차별시정소위에서 위원 전원이 동의해 시정권고는 인권위 공식 결정이 됐다. 앞서 유지은(34)씨 등 <대전 엠비시> 여성 아나운서 2명은 지난해 6월 “<대전 엠비시>가 여성임을 이유로 고용 형태나 고용 조건에 있어 차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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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차별시정 권고로 큰 고개를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인권위 결정을 앞둔 지난 22일 유 아나운서를 만났다. 정오엔 라디오, 저녁엔 텔레비전 뉴스를 진행하고 아침 뉴스와 오후 토크쇼에 나오기도 했던 유 아나운서는 인권위 진정 뒤 2개월여 만에 라디오 프로그램 1개를 뺀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 같은 처지의 다른 여성 아나운서도 하차 통보를 받았고, 그는 결국 <대전 엠비시>를 떠나 전직했다.
“뉴스 생방송 30분 전 하차 통보를 받았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생방송을 하는데 카메라 자막 화면이 새하얗게 보이고 몸이 바들바들 떨리더라고요. 지난 6년간 뉴스 진행해 온 익숙한 곳이었는데도요. 사람이 왜 공황장애를 겪게 되는지 알 것 같았죠.”
진정을 낸 여성 아나운서 2명이 하차한 자리는 다른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채워졌다. 방송사가 아닌 프로그램 제작자가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출연 계약을 맺고, 대신 아나운서는 한 방송사에 매이지 않고 프리랜서로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조건으로 고용계약이 체결됐다. 유 아나운서는 6년 전 자신이 입사하던 때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2014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경력 공개채용으로 <대전 엠비시>에 입사했어요. 애초 프로그램별로 자유롭게 출연 계약을 하는 고용 형태가 아니었죠. 업무의 내용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아나운서와 같았어요. 아나운서 모두 편성제작국 소속으로 프로그램을 맡아 하루 8시간 이상 일했고, 주말 당직 근무도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와 번갈아 섰어요. 정규직 아나운서 선배가 휴가 간 뒤 업무 공백도 여성 아나운서가 메웠죠. 그런데 여전히 회사는 너는 애초 ‘프리랜서’로 고용한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요.”
<대전 엠비시>는 2018년 15년 만에 정규직 아나운서를 공개채용했다. 남성인 정규직 아나운서가 다른 직군으로 옮긴 뒤 생긴 빈자리였다. 유 아나운서는 “내부에선 남자 아나운서 자리란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고 말했다. 후배를 뽑는 공채 공고의 목소리 녹음도 유 아나운서가 했다. 예상대로 남자 후배가 뽑혔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여성 아나운서들은 인권위에 ‘채용 성차별을 시정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왜 이런 차별이 일어날까. 이재근 <대전 엠비시> 경영국장은 “2003년까지는 남녀 구분 없이 정규직 아나운서를 뽑았다. 이후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할 필요가 있어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형태로 아나운서를 채용했는데, 그 사이 여성 정규직 아나운서가 모두 퇴직하거나 전직해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만 남게 된 것”이라며 “2018년 정규직 공채에서는 공교롭게 합격자가 남성이었을 뿐 의도적으로 남녀를 구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정규직과 함께 비슷한 업무를 봐온 것과 관련해서는 “회사와 프리랜서 아나운서 사이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주말 뉴스 당직을 한 부분은 편성 쪽의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방송 아나운서 현황. <한겨레> 자료
지난해 8월 <한겨레> 취재 결과, 당시 <엠비시> 지역계열사에 근무하는 여성 아나운서 40명 가운데 정규직은 11명(27.5%)에 불과했지만, 남성 아나운서는 반대로 36명 가운데 31명(86.1%)이 정규직이었다. <대전 엠비시>는 여전히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는 모두 프리랜서다.
유 아나운서는 “15년 동안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고용한 것이 회사 경영상 문제였다면 남녀 차별 없이 해야 했다. 여성 아나운서가 나갔을 때는 프리랜서 채용 공고를 내는데, 남성 아나운서의 자리가 비자 정규직 채용 공고를 냈다”며 “<대전 엠비시>가 상식적인 방송사란 믿음에 소송보다는 진정을 냈는데 되레 회사는 왜 바로 소송으로 가지 않았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지역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지난 1월 전국 시민단체가 참여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책위)가 꾸려졌다. 공동대책위는 매일 <대전 엠비시> 앞에서 출근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 아나운서도 매주 월요일 1인 시위에 참여한 뒤 출근해 정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달 24일 공동대책위는 성명을 내 “여성 아나운서의 ‘젊고 예쁜’ 이미지의 유통기한을 설정하고, 그 용도가 다 했을 때 쉽게 버릴 수 있도록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며 <대전 엠비시>를 비판했다. 이재근 <대전 엠비시> 경영국장은 “아직 인권위 결정문이 나오지 않았다. 결정문을 받으면 그 내용을 보고 입장을 정할 것”이라면서도 “채용 성차별 진정 건과 정규직 임용 문제는 별 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