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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단관극장’ 원주 아카데미를 지켜라!

등록 2021-03-30 16:20수정 2021-03-30 16:25

원주시민들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막기 위해 모금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원주시민들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막기 위해 모금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타임머신이 필요 없는 반세기 전의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군사도시로 유명한 원주는 1990년대까지도 아카데미뿐 아니라 원주극장과 시공관, 문화극장, 군인극장 등 5개의 단관극장이 성업했다. 단관극장은 멀티플렉스와 달리 스크린이 하나인 옛날식 영화관을 말한다. 40년 넘게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이들 극장은 2005년 원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서자 다음해인 2006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먼저 원주극장과 시공관이 헐린 데 이어, 800석 규모로 가장 컸던 문화극장마저 2015년 철거됐다. 현재 원주에는 아카데미극장만 남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단관극장이 차례로 철거될 때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당연히 보존’이라는 태도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을 지키자며 지난달 22일 ‘아카데미 보존 추진위원회’까지 꾸렸다. 개인과 단체 회원 등 80여명이 모였다. 앳된 얼굴의 중학생에서부터 팔순을 넘긴 어르신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이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아카데미극장 건물은 리모델링해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인 곳은 있지만, 단관극장의 외형을 유지한 채 영사기와 스크린, 관람석, 매표소 등 내부 시설과 설비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언제라도 극장 본연의 기능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아카데미 보존 추진위원회 임시위원장을 맡은 장승완(50)씨는 “아카데미극장은 충분히 보존 가치가 있다. 당시에는 단관극장에서 영화 관람뿐 아니라 공연과 강연, 졸업식, 시민 노래자랑 등이 펼쳐졌다. 시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큰 문화, 소통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냥 허물어버릴 것이 아니라 이곳이 다시 예전처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야간에 찍은 아카데미극장 모습.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야간에 찍은 아카데미극장 모습.

시민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추억의 장소인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희망하고 있다. 시민 김혜숙(66)씨는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영화는 우리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명절 때 극장 앞에 허공을 가로질러 만국기가 펄럭이고, 표를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로소 명절 분위기가 났다. 학교 강당이 없어 극장에서 초등학교 졸업식도 했다. 특히 아카데미극장이 맺어준 인연으로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낳고 잘살고 있다”고 반겼다.

단관극장 ‘시공관’ 인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심재근(60)씨는 “어린 시절 선망의 대상이던 극장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카데미가 다시 영화관으로 부활했으면 좋겠다. 아카데미와 삶을 같이 한 이들은 이 건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아카데미극장 아카이빙북 <멈춘공간>을 제작한 김효정(28)씨는 “아카데미극장이 버려진 폐건물에 불과하다며 없애고 재개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걸 안다. 그러나 건축물에는 많은 사람의 기억이 건물의 벽과 바닥, 문 손잡이, 의자 등에 흔적과 먼지로 남아있다. 추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오래된 친구를 잃는 것처럼 허탈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극장 내부 모습.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극장 내부 모습.

문제는 ‘예산’과 ‘시간’이다. 원주시도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도시재생사업을 통한 극장 살리기에 나섰지만 문화재청이 주관한 근대역사문화공간 활성화 공모 사업에 탈락한 뒤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원주시가 매입하지 않으면 극장은 철거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추진위는 이를 막기 위한 첫 사업으로 ‘아카데미극장 구하기 100인 100석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카데미극장 살리기에 공감하는 시민 100명을 모아 1억원을 모금하고 기부자 이름을 극장 좌석에 새겼다. 매입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돈이지만 시민의 간절한 바람을 원주시에 전달해 시에 매입을 촉구하기 위한 시작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103명이 참여해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무위당사람들과 중천철학재단, 극단 노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등 지역 단체와 한국관광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 혁신도시 공공기관도 힘을 보탰다.

추진위는 아카데미 구출 2단계 사업으로 지난 8일부터 새로운 모금 프로젝트 ‘아카데미3650’을 진행하고 있다. 더 많은 시민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원주시 인구(유동 인구 포함) 36만5000명 가운데 1%인 3650명 참여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다. 모금 단위는 1만원부터 500만원까지 다양하다.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극장 내부 모습.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극장 내부 모습.

시민들은 원주시가 시비 31억5000만원만 투자하면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카데미극장 매입에 필요한 예산 35억원 가운데 나머지 3억5000만원은 시민 모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리모델링 비용 15억원은 도비 지원을 받고, 주차장 터 매입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공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물을 매입하면 전문가 진단 등을 거쳐 추억·예술영화 상영공간이나 청년 활동가 작업·소통공간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원주 단관극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씨도로 Cinema Road>를 연출한 이민엽(30)씨는 “단관극장이 다 남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아카데미극장 하나만 남았다. 누리고 있을 때는 귀한지 모르는데 사라지면 소중하단 걸 안다. 아카데미극장은 그때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승완 위원장은 “지자체에서 예술전용 극장 등을 신축하는 사례가 있는데, 원주는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아카데미극장을 활용하면 된다. 아무런 역사도 없고 겉만 번듯한 신축 건물보다 시민들에게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사진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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