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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이 찍어누른 ‘진상특위’…4전5기 여순사건 특별법

등록 2021-06-30 04:59수정 2021-07-05 14:56

여순사건 발생부터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까지
이승만 정권 뒤 1960년 만든 ‘진상특위’ 와해
2001년 특별법 첫 발의 이후 ‘색깔론’ 시달려
1948년 여순사건 때 숨진 가족을 찾고 있는 여성.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1948년 여순사건 때 숨진 가족을 찾고 있는 여성.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일부 부대원 2000여명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반발해 봉기했다. 하루 만에 순천까지 장악한 이들은 구례·곡성·남원, 벌교·보성·화순, 광양·하동 방면으로 진격했다.

이승만 정부는 10월21일 반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진압에 나섰다. 진압군은 같은 달 27일 여수, 순천 등 대부분 지역을 탈환한 뒤 이적행위자 색출과 보복이 시작됐다. 이념을 달리한 이들은 물론, 이웃에게 혹은 친구에게 이른바 ‘손가락총’으로 지목당한 민간인들까지 반박할 기회도 없이 현장에서 맞아 죽거나 총살당했다. 1949년 11월 전남도가 집계한 여순사건 인명 피해는 1만1131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인 1960년 4대 국회에서 `국회 양민학살진상조사특위'를 구성했지만, 이듬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탄압당했다. 이후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눌려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뒤 민간연구기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50주년을 맞은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이후 2001년 4월, 2011년 1월, 2013년 2월 여순사건 진상규명 등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2017년 4월~2019년 1월 사이 여순사건 관련 5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이와 별도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05~2010년 여순 관련 사건 730건을 신청받아 712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신청 사건 위주로 조사가 진행돼 전반적인 피해 상황 파악은 어려웠다.

순천지역 희생자 유족들은 과거사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3년 포고령 위반과 내란혐의 유죄 판결 재심을 청구해 2019년 3월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어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지난해 1월 고 장환봉씨, 올해 6월 고 김영기씨 등 9명에게 포고령 위반과 내란혐의 무죄 판결을 내리며 국가의 불법 행위를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72주년 추모제에는 처음으로 민간인·경찰 희생자 유족이 참석해 화해했다. 같은 달 전남도의회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켜 자치단체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 근거를 마련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여순사건은 4·3 연장의 역사, 이젠 ‘반란의 멍에’ 벗겨야죠”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인터뷰 I 여수사회연구소 이영일 이사장

“법안이 자동 폐기될 때마다 여순사건이 아직도 반란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답답했죠.”

여순사건 특별법의 산파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65) 이사장은 29일 “20년이 걸렸지만 해냈다. 앞으로 여순사건의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애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순사건 50주년이었던 1998년부터 여순사건 실태조사와 진상규명 등에 매달렸다. 지역의 역사를 조망하자며 95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회원을 300여명으로 늘렸다. 이어 여순사건 유족회를 조직하고 국민청원 운동을 전개했다. 5·18보상법과 제주4·3법을 비교해 특별법안에 담아야 할 내용을 챙겨 전남 동부지역 국회의원들을 꾸준히 만났다.

“제정이 늦어진 이유는 뿌리 깊은 적색 공포증 때문이에요. 이승만은 여순을 적색 지대로 표현했고, 14연대를 반란군대로 낙인찍었어요. ‘반란 사건에 무슨 특별법을 만드느냐’는 반감이 수십년 동안 사회 전반에 깔렸었지요.”

그는 “특별법 제정은 국가폭력을 범죄라고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국가에서 작성한 진상조사보고서가 여순사건에 씌워진 이념의 멍에를 벗겨줄 것으로 기대했다.

“여순은 제주가 연장된 역사다. 4·3이 진실이라면 여순도 같다. 그 전에는 별개의 사건으로 봤다. 당시 군대의 행동도 역사가 재평가할 것이다. 48년에는 군대가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고, 80년에는 (광주에서) 군대가 부당한 명령에 복종했다. 두 사건이 더는 국가폭력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다.”

그는 “여순은 분단사의 마지막 금기이자, 민족사의 과제였다. 이 대목을 해결하면 분단체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분단체제로 말미암아 73년 동안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희생자를 위령하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고 다짐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 그는 “특별법 제정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며 “이번 특별법은 2000년 1월 통과됐던 제주4·3특별법 내용에 한참 못미친다.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 시행령 제정과 진상조사 진행, 평화인권 교육 등에 시민사회의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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