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의회에서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지역복지 인프라 구축을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비대면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 이정기 사회복지사 제공
“저는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급차를 탄 채 입원을 해야 했을까요?”
‘멋진남자’라는 가명을 사용한 ㄱ씨는 6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지역복지 인프라 구축을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8살에 처음 조현병이 발병해 1개월~1년씩 총 여섯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강제입원의 경험은 없지만, 제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할 때의 분노와 상처는 여전히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다”며 “당시에 그저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진정으로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상처가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부와 단절된 병동 생활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입원 후의 병동 생활은 계급사회였다. 누가 부여하는지도 모르는 등급을 부여받고, 산책이나 외출을 할 수 있는 높은 등급을 부러워해야 했으며, 통제에 익숙해져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전화를 하루에 두 번밖에 하지 못한다는 점이 나를 고립시켰다”며 “사회와 단절된 저는 스트레스를 풀 수 없었고, 치료를 위해 입원했지만 나아졌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음에 예민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던 ㄱ씨는 “일반 병원처럼 1인실이나 다인실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침대 간 간격이라도 넓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오롯이 보호실이 아닌 곳에서 혼자 안정을 취하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ㄱ씨는 광주시가 정신질환자 입·퇴원 및 치료 과정에서 절차보조 사업을 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신질환자 절차보조 시범사업은 정신질환자들이 강제입원했을 경우 동료 활동지원가들의 도움으로 동의 입원으로 바꾸거나 퇴원 절차, 복지기관 이용 시설 안내 등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 12월 서울·부산·경기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경기에서 3년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ㄱ씨는 “절차 보조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심리 정서적인 안정감과 함께 이해, 소통의 경험을 준다. 광주시에서도 당사자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 입원자가 사회에 원활하게 복귀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ㄱ씨는 “장기 입원을 하게 되면 사회에 나가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입원 초기부터 지역사회와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병원에서는 치료와 재활을 분리하지 않고 당사자가 사회에 원활히 복귀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특성에 맞는 개별 서비스 계획이었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치료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방안들이 혹시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토론회는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광주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광주정신재활시설협회, 송광정신재활센터, 요한빌리지가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는 정신장애인의 자립에 필요한 정책과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나 활동가들이 의견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신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이정기 사회복지사는 “발제 및 토론 등을 모두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준비하고 진행했고,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선 광주지역에서 생활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방안을 △직장생활 △교육 △주거 및 복지서비스 △치료환경 △당사자 역량강화 및 리더 양성 등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눠 발표했다.
5명의 토론자는 광주지역의 정신재활시설 및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당사자들로,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 당사자 입장에서 바라는 지원방안을 제안했다.
동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묘현(36·가명)씨는 “정신장애인은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업장에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 잠시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9년째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박득수(51)씨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시설에서 퇴원한 뒤 살아갈 주거공간이 절실하다”며 “각자 희망 사항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형 주거지원과 다양한 주거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선우(50) 광주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는 “광주에 등록된 장애인 약 7만명 중 정신장애인은 약 3100여명으로 15개 장애유형별 인구 중 여섯 번째로 높은 비율”이라며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적용 제한 등으로 장애인복지 전달체계에서 배제돼 건강권·노동권·교육권·주거권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