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근로자건강센터 직원들과 노조 관계자들이 2018년 3월 조선대 본관 앞에서 위탁계약 해지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문길주씨 제공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직업성질환 예방·상담 등을 담당하는 근로자건강센터가 불법파견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전국 23곳 근로자건강센터에는 300여명이 일하고 있어, 법원 판결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광주지법 민사13부(재판장 송인경)는 지난 2일 문길주 전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이 산업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8년부터 전국 근로자건강센터 통합전산시스템을 도입한 뒤 각 센터의 주간·월간 실적을 확인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리했고 (센터는) 공단 이사장이 지시하는 사무도 다 해야 했다”며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 있는 업무를 상시로 지시했고 원고가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 해당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엔 ‘고용노동부장관이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근로자건강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부터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에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을 위탁했고, 공단은 23개 권역별로 병원이나 재단 등 민간기관에 업무를 맡겨 근로자건강센터를 운영하도록 했다. 센터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직업성질환 등을 관리한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를 보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산재의 75%가 일어나고 근로자 비중도 59%(1897만명 가운데 1128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이어서 보건관리자를 둘 법적 의무가 없다.
2012년 4월 문을 연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내내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운영해오다가 지난해 초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으로 위탁운영기관이 바뀌었다. 조선대 산학협력단 소속으로 2013년부터 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해오던 문씨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무기계약직 고용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위탁기관이 바뀌었고,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은 고용을 승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씨는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센터에 필요한 업무를 직접 지시”해 도급이나 위탁이 아닌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며 지난해 10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에서는 2년 이상 파견직으로 일한 근로자는 사업주가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조선대 산학협력단 사이의 위탁운영계약의 실질은 근로자 파견 계약이므로, 조선대 산학협력단은 파견법에 따라 근로자 파견 사업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허가받지 않았다”며 “파견법을 위반해 근로자 파견의 역무를 받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원고를 고용한 2013년 1월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쪽은 재판 과정에서 “조선대 산학협력단에 운영을 위탁한 도급계약”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광주지역 노동계에서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문길주씨 제공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고용노동부가 근거 없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위탁한 뒤 민간기관에 재위탁하는 형태로 근로자건강센터를 운영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씨 법률대리인 ‘일과 사람’ 손익찬 변호사는 “노동부가 원래 수행해야 하는 사업인데, 안전공단에 위탁한 근거도 없고 재위탁 근거 또한 없다. 근로자건강센터를 민간위탁한 뒤 실질적으로는 공단의 한 부서로 일했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쪽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판결문을 받지 못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번 소송과 별도로 건강센터 운영상의 미비점 등을 전반적으로 보완하는 취지의 운영 개선 계획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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