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울산 북구)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지방의료원 설립 관련 토론회. 이용빈 의원실 제공
광주시와 울산시가 지방의료원을 건립하기 위해 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신청했지만, 타당성 재조사 절차를 다시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설계용역비를 반영하는 바람에 예타 대상인 신규 사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타당성 재조사는 시간이 꽤 걸리고 결과도 어떻게 나올지 장담하기 어려워 지방의료원 설립 계획이 꼬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보건복지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광주시와 울산시는 지난 11월 복지부를 통해 기획재정부에 ‘지방의료원 설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서'를 제출했다. 광주시는 2026년까지 2195억원을 들여 서구 마륵동 일대 2만5천㎡ 터에 350병상 규모의 공공의료원을 설립할 방침이다. 울산시도 2025년까지 2880억원을 들여 북구 창평동 일대 4만㎡ 터에 500병상 규모의 울산의료원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2021~25)을 확정하면서 서부산·대전·경남 진주권 3곳 공공의료원을 예타 면제 요청 대상으로 확정했다. 이 가운데 대전의료원과 서부산의료원 설립 사업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예타 면제가 의결돼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경남도는 기본계획 수립 등 용역 결과를 첨부해 지난달 복지부를 통해 기재부에 예타 면제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결국 복지부 1차 심사에서 밀린 광주와 울산도 추가로 예타를 면제해달라고 나선 셈인데, 이들이 예타 면제에 매달리는 이유는 지방의료원 사업이 ‘예타의 벽’을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사업비 500억 원 이상 , 국비 지원 규모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 의 경우 비용 대비 편익이 얼마나 되는지 기재부의 예타 조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 하지만 토목공사에 주로 적용되는 평가 기준을 지방의료원 건립 사업에 적용하면 비용편익비(B/C)는 1을 넘기기 힘들다. 다만 기재부가 최근 공공의료와 감염병 대응 등 지방의료원의 특수성을 별도 항목으로 평가해서 가점을 받도록 타당성 평가 기준을 마련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광주시가 계획하고 있는 광주의료원이 들어설 예정 터. 광주시 제공
보건복지부 지방의료원 확충 계획. 옥민수 교수 제공
문제는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광주·울산 지방의료원 설계비가 각각 10억원씩 ‘쪽지 예산’으로 반영됐다는 점이다. 이지원 기재부 타당성심사과장은 “예타 대상은 신규 사업에만 해당되는데, 국회에서 예산이 반영되면 예타와 예타 면제 신청 대상이 되질 않는다. 광주시와 울산시 지방의료원 설립 사업은 타당성 재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타당성 재조사는 예산이 반영돼 추진되는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재조사해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도입한 제도로, 실질적 내용은 예타와 똑같다.
광주시와 울산시는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려고 예타 면제를 추진했는데, 이른바 ‘쪽지예산’이 반영되면서 타당성 (재조사) 검토 대상으로 확정이 된 셈이다. 타당성 재조사가 1년 이상 걸릴 경우엔 설계용역비를 반납해야 하는 등 사업 추진은 더뎌질 수도 있다. 옥민수 울산대병원 교수(예방의학과)는 “타당성 재조사도 공공의료 관점에서 경제성 분석의 편익 항목 범위를 확대해 심의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예타의 벽’에 부딪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대규모 바이러스 방역 상황 등을 고려해 타당성 재조사도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욱수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지방의료원 설계용역비가 반영됐다는 것은 사업 추진에 첫걸음을 뗀 것이다. 기재부에서 지난달 지방의료원 예타 제도 개선 방안 방침을 마련했기 때문에 공공성 등의 항목이 지방의료원 타당성 재조사 심의에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대하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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