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황백화 현상이 나타난 김. 해남군청 제공
“올해 김 농사는 다 끝장났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지요.”
평생 김 양식을 해왔다는 어민 이승철(58·전남 송지면 내장리 어촌계장)씨는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여느 해 같으면 물김을 채취하느라 온종일 바다에서 보내는데 올해는 속이 상해서 일주일째 어장에 나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말부터 애초 검붉던 물김 색깔이 시들시들 누렇게 변했다. 김 양식장 70%에서 황백화가 나타나 채취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손 놓고 있다”고 말했다.
100m짜리 김발 330줄을 시설한 그는 지난 3일, 상황을 점검해달라는 군 요청에 못 이겨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더욱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대번식한 플랑크톤이 마을 앞 갈도~논개섬 사이 내만을 훑고 연안으로 진출하는 것을 보고 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김 양식은 망친 셈 쳐도 내년, 후년에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전국 김 생산 3위인 전남 해남군 바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2월부터 나타난 황백화 현상이 내만에서 연안으로, 김에서 다시마로 확산하며 피해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주산지인 해남~진도해역 어민들은 “올겨울 바다 농사는 끝장났다”고 입을 모은다. 이 상태라면 물김 수매조차 불가능해 아예 채취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속출할 전망이다. 피해는 다시마 양식 어가로도 번져가고 있다. 이맘때면 물김 채취선 70~80척이 빼곡해 활기찼던 이 해역엔 어선 10척 미만이 띄엄띄엄 떠 있을 뿐 한적하기만 하다.
황백화는 해조류들이 검거나 붉은 본래 색깔을 잃고 노랗고 하얗게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식물성 플랑크톤(규조류)이 대량 발생하면서 바다 영양분을 흡수해 해조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이유로 어민들은 황백화를 ‘해조류 영양실조’라고 부른다.
황백화 피해 비율은 이날 현재 김이 31%(29개 어촌계 2980㏊, 162억원), 다시마가 11%(3개 어촌계 152㏊, 8800만원)로 조사됐다. 통상 해조류 수확이 4월에 마감되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명현관 해남군수가 8일 다시마 엽체 녹음과 탈락 피해 해역을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 해남군청 제공
해남군은 어가별로 피해 신고를 받는 중이고, 발병 원인과 피해 규모를 파악한 뒤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재해 복구를 해양수산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지난 3일에는 물김 수거 폐기 예산 40억원을 국비나 도비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대용 군 어업진흥팀장은 “피해 양식장에서 물김을 수거하도록 하루 25만원의 어선임대료를 지원하고, 수거한 물김을 수매해 폐기할 수 있도록 3억원을 편성했다”고 전했다. 어민들은 “김 양식 시설 1줄에 투자비 70만~80만원이 들어가고, 코로나로 인부 인건비도 한달 300만원까지 상승해 상황이 매우 어렵다”며 “물김 120㎏ 한 망에 11만~12만원으로 시세가 좋을 때 타격을 입어 피해가 크다”고 전했다.
피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달 18일 국립수산과학원, 전남 해양수산과학원, 해남군, 해남군수협 등의 전문가와 송지면 어촌계장 등 17명이 참여해 합동조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조사에서 규조류 대량 발생으로 영양염 농도가 낮아지면서 피해가 났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을 뿐, 규조류가 대량으로 발생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내장어촌계를 중심으로 김발 설치 간격을 현재 3~4m에서 8m로 늘리고, 갯벌 바닥의 퇴적물을 정화하는 등 자구 노력으로 해조류 양식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황백화로 누렇게 변한 수확 전 물김. 해남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