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전남 광양시 광양시민광장에서 열린 ‘여수·순천 10·19 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에서 유족 김명자씨가 여순사건으로 숨진 아버지의 사연을 말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쇠머리재에서 할머니가 피범벅이 된 주검 위로 고무신에 담아온 물을 뿌려가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목에 총탄 자국이 있던 아버지. 차마 이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19일 오전 전남 광양시 광양시민광장에서 열린 ‘여수·순천 10·19 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 단상에 오른 유족 김명자(73·여)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70년 켜켜이 쌓인 한을 들려줬다. 김씨가 어머니 뱃속에 있던 1948년 10월 마을이장이던 김씨 아버지는 ‘산사람’(빨치산)을 피해 읍내에 머물던 중 경찰에 잡혔다고 한다. 경찰은 젊은 사람들을 광양읍 우산리에 있는 쇠머리재로 끌고 가 총으로 쏴 죽였다. 이 소식을 뒤늦게 들은 김씨 할머니는 주검 사이에서 간신히 아버지를 찾아냈다. 김씨 할아버지는 술로, 할머니는 한숨과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는 이듬해 김씨를 낳은 뒤 친정으로 떠나, 김씨는 고아 아닌 고아의 삶을 살았다.
김씨는 “올해 초 동사무소에서 피해신고를 하라는 전화가 왔을 땐 ‘왜 이제 와서’라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숙부께서도 ‘아서라, 그렇게 모질게 고통받고 기죽고 살았으면 됐지, 인제 와서 또 가슴 후빌 일 있냐’며 (신고를) 말리셨다”고 말했다. 그는 “눈물이 쌓이고 쌓이면 눈물꽃이 된다고 한다”며 “부모 없이 살아온 유족들은 이제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됐다. 유족 마음속에 핀 눈물꽃을 닦아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추념식은 처음으로 정부가 주최했다. 올해 1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역대 국무위원 중에서 처음으로 추념식에 참석했다. 이 장관은 “긴 통한의 세월을 버텨내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여순사건 유족회와 함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모든 피해자가 신고할 수 있도록 3개월밖에 남지 않은 피해신고 접수 기간을 1년 더 연장했다. 현실적인 지원 제도 마련과 국가기념일 지정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9일 전남 광양시 광양시민광장에서 열린 ‘여수·순천 10·19 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에서 유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여수·순천·광양·구례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뒤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만1131명(1949년 전남도 조사)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법이 시행된 올해 1월2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피해신고 3424건이 접수됐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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