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호남진흥원 연구자들이 전남 고흥 류씨 문중 고문헌을 기탁받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누리집
“원래 국립중앙박물관에 집안 고문헌을 기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부친께서 차일피일 미루시더라고요.”
광주시와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광주 광산구에 있는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전북 부안에 설립되는 전라유학진흥원과 통합해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자료 기탁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1호 기탁자인 행주 기씨 문중의 기호철(57)씨는 8일 “가친(기준서·91)께서 ‘선대의 자료들을 고향 밖으로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 기탁을 미루다가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설립돼 고문헌 3600여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진흥원이 전북 부안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턱 막힌다”고 말했다.
고문헌 기증·기탁자 10여명은 8일 오후 2시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한국학호남진흥원 회의실에 모여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진흥원의 전라북도 이전을 강행하면 기탁한 문헌자료를 모두 회수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8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고문헌 기탁자들이 창립총회를 열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기증·기탁자 협의회 제공
앞서 광주시와 전라남도, 전라북도 자치단체장은 지난 8월 사적인 자리에서 호남지역 한국학 연구 통합 기관을 설립하자고 구두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세 광역시·도 실무자들이 두차례에 걸쳐 만나 실무협의회 구성 등을 논의했다. 앞서 광주시와 전라남도는 2018년 광주시공무원 연수원 3~4층에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설립했고, 당시 호남진흥원 통합 설립 논의에 불참했던 전라북도는 부안에 전라유학진흥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두 연구기관이 통합한 뒤 통합 청사를 부안으로 옮긴다”는 말이 돌았다.
한국학호남진흥원 기증·기탁자들은 이날 “진흥원이 문헌자료를 7만여건이나 수집했지만, 수장고 등이 없어 제대로 보존·연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인 것에 경악한다. 수장고와 청사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광주시 쪽은 “3개 시·도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린 뒤 통합 여부나 청사 적합지 등을 논의할 예정일 뿐,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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