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자치연금 지급 주체인 전북 완주군 비봉우리콩두부 영농조합법인 사업장 앞에서 관계자들이 콩으로 만든 제품을 들고 서 있다. 완주군 제공
“생각지도 않았는디 공짜로 돈을 주니께 좋기는 혀. 손주들이 왔는디 용돈을 못 주면 마음이 껄쩍지근(불편)허잖어. 용돈을 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지난 8일 전북 완주군 비봉면 평치마을에서 만난 강숙희(79)씨는 연신 싱긋벙긋했다. 강씨는 이 마을 영농조합법인에서 지급하는 마을자치연금 5만원을 지난달 31일에 받았다. 남편도 별도로 5만원을 받았다. “아, 부부가 합쳐서 10만원을 받았응게 한턱 쏴야지, 안 그려?” 옆에 있던 마을 부녀회장 최쌍녀(71)씨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최씨는 지급 연령(75살)에 4년이 모자라 연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안 부러워. 그만큼 세상 뜰 날이 가까워지는 거잖어? 하나도 안 부러워.” 말하는 최씨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지난달 31일 전북 완주군 비봉면 행정복지센터에서 평치마을공동체 마을연금 지급 선포식이 열렸다. 완주군 제공
평치마을 곳곳에는 ‘평치마을공동체 자치연금 지급 선포식’ ‘2021~23년 사회적 경제 성장기업 육성사업 선정’ ‘우수마을기업 지정 우수상’ 같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비봉우리콩두부 영농조합법인의 조영순(56) 공장장은 “어르신들 연금이 계속 지급될 수 있게 열심히 두부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 연금을 받은 고성례(80)씨는 “연금을 준다고 할 때도 영농조합 회원들한테만 주겠거니 하고 시큰둥했는데, 회원이 아닌 사람들한테도 준다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이러다가 연금이 빨리 바닥나버리는 건 아닌지, 공돈을 받는 입장에서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다”고 했다.
평치마을은 비봉우리콩두부 영농조합법인이 두부를 판매해 거둔 수익으로 지난달부터 75살 이상 마을 주민 15명에게 매달 5만원씩을 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대상자 15명 가운데 11명은 영농법인 조합원이 아닌데도 혜택을 받는다. 평치마을은 44가구에 89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조합원은 16가구, 나머지 28가구가 비조합원이다.
전북 완주군 비봉우리콩두부 영농조합법인 마을기업 공장 앞에서 조한승 법인 대표(가운데), 조영순 공장장(왼쪽) 등이 콩으로 만든 제품을 들고 서 있다. 완주군 제공
이 영농법인은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마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2011년에 설립됐다. 지역에서 키운 우리 콩을 활용해 두부, 콩물, 찌개류 즉석식품 등을 생산하는 마을공동체사업장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생산한 흰 두부, 매생이두부, 순두부, 콩물 등은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과 각급 학교에 급식용으로 출하한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매출액이 꾸준히 늘었다. 2013년에 1억원을 달성했고, 2017년에 3억원, 올해는 지난달 말에 5억원을 넘겼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500만원가량이다.
자치연금은 창립 10주년이었던 지난해 11월 회원들의 결의로 시작됐다. 외부 지원 없이 수익금 일부를 적립해 마을 노인들을 위한 자치연금으로 지급하자는 결의였다. 조한승(64)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다른 지역의 마을연금은 태양광 시설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마을에서도 태양광 시설을 검토하기는 했지만, 마을 규모가 작아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익금을 회원들이 나눠 갖는 것보다 공동체에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조합원들이 흔쾌히 동의해줬다. 연금액이 지금은 월 5만원밖에 안 되지만, 차츰 7만원, 10만원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북 완주군 비봉우리콩두부 영농조합법인 마을기업의 두부 제품을 조영순 공장장이 포장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전북 지역에서는 평치마을보다 이른 지난해 7월 마을자치연금을 도입한 익산시 성당면 포구마을에 이어 완주군 용진읍 도계마을, 익산시 함열읍 금성마을이 마을연금을 추진하고 있다. 이 3곳은 마을 자체 사업 수익금에 지자체나 관련 기관의 지원금을 합쳐 재원을 마련한다. 최은아 완주군 사회적경제과 마을공동체팀장은 “평치마을 모델이 확산되려면 마을공동체 사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마을기업을 더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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