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개입으로 국민훈장 수훈이 무산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11일 광주 서구의 한 카페에서 시민 성금으로 마련된 ‘우리들의 인권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정부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수많은 아픔과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귀하를 어느새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양관순’이라 불러왔습니다. 30년 고단한 발걸음에 경의를 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이 상을 드립니다.”
11일 광주 서구 풍암동의 한 카페에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 회원이 상장을 전달하자 양금덕
(92)씨가 환하게 웃었다. 이날 시민모임은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 1주기 추모식에서 양씨에게 자체적으로 마련한 ‘우리들의 인권상’을 수여했다.
앞서
양씨는 30년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피해보상을 촉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9일 ‘세계 인권의 날’(12월10일)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외교부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그러자 양씨를 위해 시민모임 회원과 광주시민들이 후원금을 모아 ‘우리들의 인권상’을 만들었다. 수여자 이름엔 윤석열 대통령 대신 ‘양관순(양씨의 별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어갔다. 시상자는 할머니와 여러해 동안 인연을 맺은 시민모임 회원 장연주씨와 이정현씨, 이씨의 딸 유지민양이었다.
양씨는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됐다. 다른 데서 주는 것보다 더 좋다”며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 씩씩하게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 좌절된 인권상을 시민들이 되살렸다”며 “현재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광주 강제동원시민역사관에 일제의 만행과 함께 현 정부의 행태를 낱낱이 기록해 후대에 남기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금주 회장은 1942년 결혼 2년 만에 남편이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자 평생을 일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활동에 헌신했다. 1992년 2월 양금덕씨 등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 1000인 소송’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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