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본회의. 광주시의회 제공
광주시와 광주시의회가 내년도 본예산 심의·의결 과정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 강기정 광주시장이 수장으로 있는 지방정부와 민주당 소속 의원이 다수인 광주시의회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충돌한 것은 이례적이다.
광주시의회는 14일 7조1102억원 규모의 내년도 광주시 일반·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을 최종 의결했다. 집행부가 신청한 본예산안 중 174건 2089억원을 삭감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2천억여원을 삭감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였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폐회 전 “의원들이 요구한 사업 전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풀이식 예산 삭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발언했다. 강 시장의 ‘작심 발언’은 시의회 예결위원회가 5·18 구묘역 성역화 사업, 창업 패키지 일자리 사업, 케이뷰티 일자리 예산 등을 삭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 시장은 “심의권 남용이다. ‘쪽지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집행부 사업을 대부분 삭감한 책임은 온전히 의회에 있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강 시장이 언급한 ‘쪽지예산’은 시의회 상임위 심사 때 추가된 예산을 말한다. 자치구 민원성 도로개설 사업 8건은 시 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가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반영돼 ‘증액’됐으나 시는 불요불급한 사업이라고 보고 동의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법상 예산 증액 땐 집행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광주시 관계자는 “시의회에서 증액 요구한 사업 대부분을 동의했지만, ‘민원성 사업’만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를 문제 삼아 예결위에서 원점으로 돌려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강 시장은 14일 오후 휴가를 내고 무등산에 올랐다.
광주시의회는 강 시장의 ‘불통 정치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무창 시의장은 “상임위 심사 때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사업들이 예결위 심사에서 뒤집히고 부동의 함으로써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ㄱ의원은 “시의회 증액 요구는 안된다고 하면서 상임위가 삭감했던 20개 사업은 예결위에서 모두 살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광주시의회 의원 23명 중 10명은 14일 오후 예산안 의결이 끝난 뒤 곧바로 싱가포르 관광·교육시설 및 도시재생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국외연수(4박6일)를 떠나 눈총을 샀다.
광주시와 광주시의회의 ‘예산 충돌’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바람직한 마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ㄴ의원은 “사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은 집행부가 한다. 그런데 집행부가 추진하려는 사업에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중단시키는 방법은 예산 삭감이 유일하다. 만약 집행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업 예산이 삭감됐다면 의회에 사전에 충분하게 설명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는 “지방정부와 시의회 소모적인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광주시의회가 예산안 심의·의결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시정을 주도하기보다 의회와 협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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