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성금을 계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23년째 찾아왔다.
전주시는 27일 “이날 오전 11시1분께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성산교회 오르막길의 노란색 유치원 차량 뒷바퀴에 상자를 두었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끊었다”고 밝혔다.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였다고 한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현장에서 돈다발과 돼지저금통, 쪽지가 담긴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성금은 5만원권 지폐와 동전을 합해 모두 7600만5580원에 달했다. 이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23년째, 24차례에 걸쳐 성금을 보내줬다. 올해 성금까지 합하면 그동안 누적액이 모두 8억8473만3690원이다. 2019년에는 노송동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6천여만원의 성금이 도난당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차량 옆 상자. 전주시 제공
이름·직업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가 남긴 쪽지에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전주 학생들과 소년소녀가장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내시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전주시는 천사의 뜻에 따라 성금을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위한 지원금으로 쓸 예정이다.
한편 전주시는 2010년 1월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할 수 있도록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세웠다.
천사가 놓고 간 상자 안의 돈다발과 메모지. 전주시 제공
2015년에는 주민센터 주변에 기부천사 쉼터를 조성했고, 옆 대로는 ‘천사의 길’, 주변은 ‘천사마을’로 이름 지었다. 2017년에는 천사의 길을 따라 천사벽화를 그렸다. 2018년에는 주민센터 들머리에 천사기념관을 조성했으며, 2019년에는 천사의 거리 안내조형물을 설치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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