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 앞에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주최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대하 기자
17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 앞 골목길. ‘분통 터진 사람’ 명의로 걸린 펼침막엔 “5·18을 두 번 죽이는 군복들이 오는구나”라고 적혀 있었다. 오전 11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가 집회를 시작했다. 얼마 전 ‘특전사동지회와 함께하는 포용과 화해와 감사 대국민 공동 선언식’(이하 ‘화해 선언식’)을 비판했던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을 비판하는 집회였다. 부상자회는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와 함께 19일 오전 ‘화해 선언식’을 연 뒤 군복 차림의 특전사동지회 회원 150여명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부상자회 회원들은 “김형미 관장이 사적 감정으로 5·18 진상규명의 첫발을 딛고자 하는 행사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고 주장했다. 집회 도중 부상자회 회원들이 골목길에 걸려있는 ‘화해 선언식’ 비판 펼침막을 걷어내고 자신들이 준비해온 펼침막을 걸었다. 이 펼침막엔 ‘노태우 아들 노재헌에게 90도 인사하는 김형미 관장의 실체를 고발한다’고 적혀 있었다. 부상자회는 “노태우의 진정한 사과도 없었는데 아들 노재헌은 누구의 승낙을 받고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을까요?”라고 물었다.
17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 앞에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주최로 열린 집회. 정대하 기자
광주진압작전에 맞서 ‘기동타격대원’으로 마지막 밤까지 항쟁에 참여했던 김공휴씨와 ‘5월27일 마지막 방송’ 주인공 박영순씨. 정대하 기자
이날 오월어머니집 앞에선 5·18이 경찰 통제선을 경계로 두 개로 갈렸다. 5·18부상자회가 성명서를 낭독하자, 오월어머니집 쪽에 있던 5·18유공자들이 앰프를 동원해 민중가요를 고음으로 틀었다. 양쪽의 고함과 맞고함, 욕설이 오갔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이미 입장문을 냈기 때문에 오늘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월어머니집은 최근 ‘화해 선언식’을 겨냥한 입장문에서 “발포명령과 암매장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화해와 용서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국민과 오월 영령들을 기만하는 정치쇼를 중단하라”고 했다.
5·18 때 당한고문으로 휠체어를 탄 이창희(60)씨가 17일 오월어머니집 안에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다.정대하 기자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함께 싸웠던 옛 동지들은 의견이 갈렸다. 5·18 때 505 보안부대에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이창희(60)씨는 “당시 진압군들은 광주 시민 주검을 몰래 묻은 곳부터 밝혀야 한다. 그리고 오월어머니집 앞에서 석고대죄하고 검정 양복을 입고 5·18 묘지를 참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광주진압작전에 맞서 ‘기동타격대원’으로 마지막 밤까지 항쟁에 참여했던 김공휴(62)씨는 “특전사와 화해 선언식을 통해 물꼬를 트면 5·18 진압군이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일기나 기록 등을 끌어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7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 앞에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주최로 열린 집회.
시민들 표정은 착잡했다. 한 시민은 “일부 진압군 사병들은 반성도 하지만, 특히 공수부대 대대장·여단장급에선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화해 선언식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5·18 유공자 심영의 작가는 “5·18 가해자들 역시 분단체제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만, 진상조사에 대해 가해자 쪽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데도 섣부르게 화해를 시도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관계자들이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정대하 기자
이날 집회가 열리는 동안 오월어머니집 관계자들은 사무실 앞마당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 5·18 당시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건넸던 주먹밥은 ‘광주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월어머니집 주변에선 5월의 공동체를 만든 그날의 연대와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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