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연극계 성폭력 사건 해결 대책위원회’는 2022년 6월29일 광주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 제공
“문화·예술계 선후배라는 위계적 관계 속에선 선배들의 폭언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광주지역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ㄱ씨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예술계의 언어폭력에 관해 “‘목소리는 좋은데 왜 연기를 못하느냐?’는 등의 언어폭력이 잦은데도 대응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원 기관의 장이나 정치인 비위를 맞추는 내용이 맥락 없이 대본에 첨가되거나 비판적인 내용은 삭제돼 자율성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고 푸념했다.
광주광역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예술인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제정해 시행에 들어가자 지역 문화·예술계가 환영하고 있다.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등 광주 문화·예술단체들은 “표현의 자유, 직업적 권리 보호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등에 관한 최소한의 권리보호 기준이 마련됐다”며 “광주시가 현장 예술가들의 집담회 등 협치를 통해 예술인의 권리 신장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도록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의회 김나윤 의원이 대표 발의해 지난달 23일 공포된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안’엔 예술인 성희롱·성폭력·권리침해행위 방지 조치 및 예방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뒤 전국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의무를 구체화한 조항을 조례에 담은 것이다.
독립기획자 임인자 감독은 “예술인 10명 중 7명은 계약서를 쓰지 않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데, 성희롱·성폭력 방지와 권리 보장을 위한 의무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형원 광주시 문화도시정책관실 주무관은 “올해부터 성희롱·성폭력 방지 등을 위한 예술인 대상 교육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된 광주 예술인은 지난달 6일 기준으로 3836명에 이른다.
하지만 조례안은 여전히 보완해야 할 내용이 많다. 예술인들의 피해 구제와 권익 증진을 위해 ‘예술인 권리보장 심의위원회’와 ‘예술인권익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게 했지만, 의무조항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 쪽은 “별도의 기구 설립이 필요한지 예술계와 논의하고 정책 반영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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