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호남전기 여성 노동자들이 80년 5월 대량해고 움직임에 맞서 파업을 한 뒤 도청 앞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도청 분수대 맨 앞줄에 앉아서 구호를 외치던 여성들이 찍힌 흑백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광주 푸른연극마을 30돌 기념공연 작품 <안부>를 쓴 이당금 작가 겸 배우는 28일 “빛바랜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잊힌 오월 서사를 작품으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의 빛바랜 사진엔 광주 호남전기(현 로케트전기) 여성 노동자들이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1200여명이 일했던 호남전기 여성 노동자들은 대량해고 움직임에 맞서 총파업에 나서 승리했고, 80년 5월 15,16일 이틀 동안 점심을 걸러 모은 빵과 우유를 대학생 시위대에 전달했다.
푸른연극마을 창단 30돌 기념 연극 <안부>를 쓴 이당금 작가(왼쪽에서 두 번째)는 배우로도 출연한다. 푸른연극마을 제공
호남전기 여성노동자 등 오월 여성들은 80년 5월18~27일 열흘간의 항쟁에 참여했다. “당시 오월 여성들은 계엄군 탱크 앞에서 마이크 하나를 들고 가두방송을 했고, 시민군들의 밥을 짓는 취사반을 자처했으며, 성금을 모았으며, 대검에 찔리고 총알이 뚫고 나간 주검들의 염을 했다.” 하지만 “여성이었기에 항쟁 이후 혹시라도 누가 알까 봐 쉬쉬했고, 심지어 광주를 떠났다.” 이당금 작가는 “5·18 한복판에 있었던 앳된 여성 노동자들을 연극을 통해 역사 앞에 호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부’는 5·18항쟁 마지막 날 옛 전남도청에 남아 있던 여성들의 모임인 ‘오월여성회’에 주목한다. 박정(23), 이순(22), 고달(20) 등 여성 노동자들은 80년 5월17일 노동자 궐기대회를 준비하던 중 신군부 집단의 학살에 맞서 항쟁을 치른다. 헤어져 안부도 없이 40여 년을 각자 살아가던 이들은 어느 봄날 만난다. 이당금 작가는 “지금까지 5·18항쟁은 총을 든 남성 중심의 투쟁적 영웅 서사가 주를 이뤘지만, 이 연극에선 여성들이 항쟁의 주체로 나선다”며 “지금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쫓기는 꿈을 꾸는 ‘그녀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80년 호남전기 노사협의 내용 자료. 전태일재단 아카이브
‘안부’는 광주문화재단이 지난해 처음으로 시작한 ‘광주문화자산콘텐츠제작지원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다. 30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열린소극장 무대에 올려진다. 광주에선 다음 달 5~9일 씨어터 연바람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평일은 저녁 7시30분, 주말은 오후 4시 공연이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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